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폐기된 간호법을 더불어민주당이 재발의하면서 보건의료직역간 갈등이 반복될 우려가 나온다.
24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간호법은 올해 4월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제동이 걸렸다. 국회에서 재투표가 진행됐고, 결국 부결되면서 폐기됐다. 민주당은 올해 7월 27일 정책 의원총회에서 간호법 재추진 방침을 정했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고영인 의원이 최근 대표 발의했다.
고 의원은 “현행 의료법은 1951년 제정된 ‘국민의료법’에 기반을 둔 의료인과 의료기관 규제 중심의 법률”이라며 “현대 의료시스템에서 변화하고 전문화한 간호사의 역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독자적인 법률을 제정해 간호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국민 건강 증진에 이바지하려는 것”이라고 간호법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에 새로 발의된 간호법은 기존 간호법 제정과정에서 논란을 빚었던 일부 문구를 수정했다. ‘지역사회’란 문구를 삭제하고, ‘보건의료기관, 학교, 산업현장, 재가 및 각종 사회복지시설 등 간호인력이 종사하는 다양한 영역’으로 열거해 불필요한 논쟁을 차단하고자 했다.
다만, 직역 간 수용 가능한 모든 내용을 담지는 못했다. 간호조무사의 자격 관련 고졸 학력 제한에 대해 간호조무사 자격 인정 조항은 ‘고등학교 졸업 이상 학력 인정자’로 명시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조무사 시험응시자격 학력제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의료기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및 응급구조사의 업무침해’ 문제 등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해당 법안이 발의되자 대한간호협회는 즉각 환영의 뜻을 보였다. 간협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는 신종감염병으로 인한 주기적 공중보건 위기에 대비할 전문 간호인력과 인구 고령화 시대에 재택간호, 방문간호 등 증가하는 간호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간호인력 확충을 위해 법·제도 개선을 강화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간호법이 제정돼야 할 필요성과 정당성이 충분하다. 간호사의 역할과 업무를 더욱 명확히 함으로써 법규의 모호성으로 인한 갈등의 소지를 없애고 다른 보건의료인과의 협력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보건의료단체로 구성된 14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 재발의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 연대는 “민주당은 폐기된 간호법안의 독소조항 문제를 해결한다고 공언했지만,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라며 “폐기됐던 간호법안과 똑같은 ‘간호사특혜법안’이다. 보건의료계의 혼란만 가중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간협은 전날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간호협회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간호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림 간호법제정특별위원장은 “간호법은 세계 보건정책의 기준이며 간호법 제정의 정당성과 필요성은 충분하다. 간호법은 초고령사회에 보편적 건강보장을 위한 필수정책”이라고 힘줘 말했다.
간호법은 1970년대부터 제정 목소리가 나왔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간협은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간호법 제정 움직임에 나섰으나 여러 차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대 국회에서도 간호법이 발의된 바 있지만 국회 복지위에서조차 논의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이번 국회 임기 내에 간호법 통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제정법 특성상 공청회, 토론회 등을 거치고 다시 상임위원회인 복지위부터 본회의까지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 4월이 총선인 것을 감안하면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단 의견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