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방만 경영 논란 때 늘 도마 위
오타투성이 영문 홈페이지 계속 방치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1980년대 초. 여권 대부분은 단수여권이었습니다.
일정 기간 한 차례만 해외에 나갈 수 있는 여권이었지요. 귀국 때는 공항 출입국 심사대에서 여권을 그냥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모서리를 가위로 ‘싹둑’ 잘라버렸거든요. 다시 외국에 나가려면 그때 여권을 다시 발급받으라는 의미였습니다.
‘해외여행’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라에서는 '누가 언제 출국했고 언제 돌아온다'를 꿰고 있기도 했지요.
당시 정부는 대외 이미지를 중요하게 따지기도 했습니다. 누구든 해외에 머무는 동안, 나라 이름에 먹칠이라도 했다가는, 되돌아오는 순간 철퇴를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획일화된 잣대'를 앞세워 국민을 옥죄던 때였으니까요. 서슬이 퍼런 국가보안법이 어느 법보다 위에 존재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우리에게도 해외여행의 자유가 생긴 것인데요. 정치와 외교 차원을 넘어, 기업을 시작으로 속속 바깥세상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민간 차원의 교류, 이른바 ‘민간외교’의 영역도 이때부터 하나둘 확대되기 시작했지요. 공공과 민간 모두 나라의 대표가 된 셈입니다.
우리의 위상도 달라졌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원조를 받던 대한민국은 이 무렵 원조의 주체가 됐습니다. 근현대사를 따졌을 때 원조수여국이 원조공여국으로 거듭난 사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자부심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는 대목입니다.
특히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원조는 여러 의미를 지닙니다. 원조 대상국과 협력을 다지는 한편, 상호 교류를 통해 경제ㆍ사회 발전을 지원할 수 있는데요. 이 과정을 통해 국내 기업이 현지에 진출할 때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도록 나라가 힘을 보태는 것이지요. 이를 대표하는 게 외교부 산하 국제협력단(KOICA)입니다.
최근 지진으로 피해를 본 튀르키예에 봉사단을 파견했다는 소식은 여러 외신에도 전해졌습니다. 이들의 활약상에도 관심이 쏠렸지요.
문득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외개발협력 공공기관 코이카의 영문 홈페이지를 살펴본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그러나 챕터를 넘길 때마다 안타까움이 속속 밀려왔습니다. 오타와 오기가 이곳저곳에 버젓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지요.
오타는 영문 홈페이지 초기 화면부터 시작합니다. 일부 창은 열어본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10여 개의 크고 작은 오타가 쉽게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본문이 아닌, 첫 제목부터 오타로 시작하는 페이지도 여럿이었지요.
이곳 영문 홈페이지는 그저 오타 몇 개가 존재한다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문장 자체가 영어 원어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의역이 없습니다. 단순히 한글을 영어로 번역하다 보니 생긴 문제이지요. 문장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인 곳도 수두룩했습니다.
코이카는 외교부에서 예산을 받아쓰는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입니다. ‘글로벌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대한민국 개발협력 대표기관’을 신조로 1991년부터 지금의 코이카가 됐습니다.
2023년 현재, 민간 부문에서 우리 대기업은 물론 수많은 대중문화 예술인들이 ‘K-브랜드’를 알리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 정부부처 산하 공공기관은 외국을 상대로 한 '영문 홈페이지' 첫 장부터 엉뚱한 단어를 버젓이 올려놓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원조수여국에서 원조공여국으로 거듭났으나 이를 담당할 공공기관은 여전히 그 시절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국민 세금을 받아 공공기관을 꾸려나간다면 적어도 나라 명성에 먹칠은 마셔야지요.
juni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