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산업다각화 욕구 맞추고
현지인채용 등 정책이해 높여야
지난달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국빈방문이 큰 성과를 거뒀다는 보도가 있었다. 사우디에서는 156억 달러(약 21조 원), 카타르에서는 46억 달러(약 6조 원)에 달하는 사업기회를 얻었다고 한다.
이미 작년 11월 사우디 왕세자의 한국 방문 시에도 40조 원의 프로젝트 수주, 또 올해 초 대통령의 UAE 방문 시 300억 달러 투자유치 소식도 있었다. 연이은 낭보를 접하니 어려움에 처한 한국 경제에 중동이 백기사로 나타났다는 느낌이 든다. 정부가 현 상황을 1970~1980년대 중동건설 붐에 비유해 ‘중동2.0’으로 명명한 것도 십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번 성과 중엔 사우디에서 전기차공장 설립, 카타르에서 LNG운반선 17척 수주 등 확정된 것도 있지만, 대다수는 양해각서 단계여서 앞으로 사업마다 협상을 통해 구체내용을 확정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우리 기업들이 얻을 성과가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다. 이제는 각 기업들이 후속조치의 주역이 되고, 정부는 필요한 지원을 하게 될 것이다.
비록 우리가 풍부한 중동 건설 경험을 갖고 있다 해도 그곳의 문화와 상관행 등에 대한 지식은 많이 부족하다. 이번 중동2.0이 과거 중동건설 붐 때에 비해 에너지 자동차 첨단신산업 방산 등으로 분야가 확대되고, 직접투자 기술협력 등으로 진출방식도 고도화되기 때문에 이처럼 부족한 지식으론 성공할 수 없다. 사전에 현지 정세 흐름, 비즈니스 환경·관행, 문화·습관 등을 잘 알고 시작해야 한다.
첫째, 최근 중동의 역학구조를 보면 △미국의 안보 제공에 대한 불신 심화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러시아의 역할 약화 및 중국의 영향력 강화 △가자지구처럼 국지적 분쟁이 있긴 하지만 중동국가들 간의 관계는 갈등에서 협력으로 변화 등이 뚜렷하다. 중동국가들은 특정 강대국에 기울지 않고 자국 이익에 중점을 둔 실리외교를 펴고 있다. 얼핏 최근 이들이 중·러와 밀착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실은 미·유럽과의 협상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둘째, 중동국가들의 핵심 경제정책을 알면 왜 우리를 원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란 튀르키예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동국가들은 과도한 석유의존 경제구조를 갖고 있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기반은 매우 취약하다. 이로 인해 저유가 때마다 재정적자와 경기침체 등의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사우디의 비전2030, UAE의 Make it in the Emirates, 카타르의 비전2030 등 국가마다 중장기 비전을 추진 중인데, 공통된 목표는 산업을 다각화하여 석유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최근 이들이 고유가를 기반으로 국가비전 실행을 가속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외국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셋째, 현지 비즈니스 환경과 관행을 제대로 알고 대비해야 한다. 의사결정이 느리고 투명성이 부족하다든지, 조급해해서는 낭패를 본다든지, 현지 에이전트 선정 시에 조심해야 한다든지 등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우리가 특히 주의해야 하는 것은 독특한 규제인데, 우선 고용 문제를 들 수 있다. 아랍인들은 육체노동을 싫어해서 현지 투자할 때 생산직 근로자는 보통 제3국인으로 채우게 된다. 그런데 사우디 UAE 등이 전체 근로자의 일정 비율을 자국인으로 채우도록 의무화하고 있고 위반 시에는 벌금 등 페널티를 부과한다.
또 일부 국가에서 프로젝트 참여기업으로 하여금 일정 비율만큼 자국산 자재를 쓰도록 요구하는 정책도 문제다. 사우디의 IKTVA, UAE의 ICV, 카타르의 타흐피즈·타우틴 등이 그 예인데, 현지 공급망이 미흡한 상태에서 이 현지화정책은 외국기업들에 큰 애로가 되고 있다.
넷째, 아랍·이슬람 특유의 문화도 꼭 알아야 할 요소다. 대다수 중동국가에선 이슬람 율법이 사회를 지배한다. 간음과 매춘, 음란물 유포, 음주, 돼지고기 판매, 고리대금은 금지되고, 이슬람교 비판과 타 종교 전파는 절대 불가다. 위반하면 이슬람법에 의해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 왼손 악수나 식사, 상대방 배우자에 대한 관심 표현도 아랍 세계에선 금기시된다.
중동은 에너지부국임과 동시에 4억8000만 명의 인구와 6조4000억 달러의 GDP를 가진, 우리가 경시해서는 안 되는 시장이다. 게다가 30세 미만 인구가 절반이 넘고, 매년 인구가 1.5%씩 늘어나고 있어 미래가 더욱 주목되는 곳이다. 모처럼 찾아 온 ‘중동2.0’ 기회를 성공으로 연결하도록 현지 특성에 맞춰 차질 없는 후속조치를 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