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HUG 보증제 놔둔 채로 전세사기 막을 수 있나

입력 2023-11-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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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 법무부, 국토교통부, 경찰청의 합동 브리핑을 열어 전세사기에 대한 무기한 단속 방침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 지시가 나온 지 이틀 만이다. 윤 대통령은 앞서 국무회의에서 “검찰과 경찰은 전세 사기범과 그 공범들을 지구 끝까지라도 추적해 반드시 처단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전세사기는 어제오늘의 사회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7월부터 범정부 차원의 특별단속으로 범죄집단을 솎아내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어제 발표로 애초에 올 연말 종료될 예정이던 특별단속은 내년에도 이어지게 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국민 염려와 불안은 여전하다”면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다짐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과거 체결된 임대차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피해가 계속 발생하는 상황”이라며 지원 방안 검토와 보완을 언급했다.

어제 발표로 전세사기 범죄 세력이 움츠러들 것으로 믿기는 어렵다. 전세는 ‘내 집 마련’의 디딤돌로 인식되는 한국 특유의 제도다. 그러나 전세사기범들이 허점을 교묘히 파고들어 전세라는 이름의 주거 안전망을 흔들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형사사법적 대응은 필수불가결하다.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시행 등의 조치도 필요성과 시급성이 인정된다. 하지만 ‘선의’를 앞세운 과도한 전세 지원 정책이 역기능과 부작용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는 점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전세에 대한 과잉 금융지원과 대출보증과 같은 포퓰리즘 처방의 문제점을 더 늦기 전에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KB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2년 23조 원에 그쳤던 전세자금대출은 2021년 말 기준 180조 원까지 늘었다. 정부의 선의가 작용한 대목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제도 전세 거품을 극적으로 부풀렸다. HUG가 그제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HUG의 올해 9월 전세보증 규모는 120조여 원에 달했다. 2년 전에 비해 40조 원이 급증한 수치다.

HUG가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내줬다가 떼인 돈도 이 와중에 천문학적으로 늘었다.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최근 5년간 임대인 대신 대위변제한 4조1582억 원 중 74%인 3조815억 원을 회수하지 못했다고 한다. 상당액이 전세사기의 먹잇감이 됐다고 봐야 한다. 이런 보증제를 놔둔 채로 전세사기를 뿌리 뽑을 수 있겠나. 전세 반환보증료율을 올리고 전세대출보증 수요를 축소해야 한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반환보증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눈여겨볼 일이다.

보다 근본적인 고민도 필요하다. 세입자들이 무작정 대출을 늘릴 수 있게 돕는 것이 능사일 수 없다. 각자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주거안정을 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포퓰리즘 정책으로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 뒤에 뒤늦게 전세사기를 근절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은 허망하고 부질없다. 사기범들은 코웃음을 치고 사기 피해자들은 피눈물을 쏟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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