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금융당국 관계자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자본시장 관련 부서에 오고 연락처를 몇 번이나 바꿔야 했다는 것이다. 이유인즉슨 한 상장사의 실수로 그의 개인 휴대전화 번호가 잘못 노출되면서 주주들의 원성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그가 비난의 화살을 받는 내용은 주가 부진, 상장폐지, 공매도 금지 등이 주를 이뤘다.
이러한 주주들의 움직임에 기름을 끼얹는 사람들이 있다. 이차전지, 초전도체 등 테마주를 활용해 개인투자자들을 불나방처럼 몰고 다니는 세력이다. 일명 ‘밧데리 아저씨’로 불리는 박순혁 전 금양 홍보이사가 대표적이다. 박 전 이사는 개인 주주들을 대상으로 종목을 추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금융당국과 공매도 기관이 유착해서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주가 부진의 원인을 금융당국과 공매도에서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상장폐지는 그렇게 쉬운 절차가 아니다. 거래소가 재무상태가 엉망인 기업에 대해 관리종목을 지정한 후 개선기간을 부여하고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정리매매를 거쳐 상장폐지된다. 부실 기업의 징후가 뚜렷하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투자하는 심리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세상에는 투자하기 좋은 회사가 널리고 널렸다.
주가 부진도 마찬가지다. 정작 개미(개인투자자)들을 형편없는 주가로 고통받게 하는 존재는 따로 있다. 한국식 기업 지배구조다. 회삿돈이 배당 말고도 최대주주의 주머니로 흘러갈 수 있는 방법이 한국에는 너무나도 많다. 대주주를 견제할 수 있는 이사회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아서 기업 내 의사결정을 지배주주를 위한 방향으로 내려지기 쉽다. 취약한 지배구조 속에서 주주환원은 미흡하고, 수익성은 낮아지게 된다. 지배주주 입장에서는 주가를 올려야 할 유인도 적다. 대주주는 주가로 주식을 팔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공매도 세력, 금융당국과의 싸움 대신 주주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기업이다. 최대주주에 유리하게 짜여진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일반 주주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기업 이익이 지배주주에게만 흘러갈 게 아닌, 일반 주주를 포함한 모든 주주에게 지분비율에 따라 비례적으로 배분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주식투자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점은 긍정적인 면이다. 다만 이제는 이러한 열기가 한국 자본시장이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