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과실로 인한 사고"…손해배상 청구 소송 제기
1심 "은행 과실 인정…1억5000여만 원 지급하라"
2심 "은행 과실 불인정…불법 거래 사실 의심하기 어려워"
술에 취한 상태로 길에서 잠들었다가 스마트폰을 도난당한 뒤 2억여 원의 정기예금이 인출되는 사고를 당한 사람이 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지난해 9월, 은행에 책임이 있다는 1심 판단이 뒤집힌 결과다.
12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1-3민사부(재판장 조용래 부장판사)는 A 씨(원고)가 신한은행(피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A 씨는 2021년 8월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 인근 도로에서 음주 상태로 잠들었다가 B 씨 등에 의해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도난당했다.
B 씨 등은 A 씨의 스마트폰을 통해 신한은행 보통예금 및 정기예금 계좌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돈을 인출하려고 했지만, 비밀번호를 5회 잘못 입력해 실패했다. 이에 신한은행 시흥동지점에 연락해 비밀번호 변경 방법을 문의한 후 신분증 확인 등을 통해 A 씨의 보통예금 및 정기예금 계좌의 비밀번호를 재등록했다.
이후 B 씨 등은 A 씨의 정기예금 계좌를 해지하고, 신한은행으로부터 환급금 2억여 원을 A 씨의 보통예금 계좌로 받은 뒤 1억5000여만 원을 편취했다.
A 씨 측은 "신한은행은 2억 원 이상의 정기예금을 중도에 해지해 주면서 추가 인증방법인 상담사를 통한 인증을 거치지 않고, 단순 ARS 인증만 거쳤다"고 주장했다. B 씨가 보내준 신분증 사진을 마치 A 씨가 실시간 보유하고 있던 주민등록증인 것처럼 적법한 인증수단으로 인정해 정기예금을 중도에 해지해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어 A 씨 측은 "B 씨 등은 원고의 스마트폰과 그 속에 저장된 신분증을 이용해 원고의 돈을 편취했다"며 "신한은행은 이를 방조했으므로 원고의 손해에 관해 B 씨 등과 함께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신한은행 측은 "관련 약관 및 법령 등에서 정하는 비밀번호 변경 절차를 준수했으므로 아무런 과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9월, 1심은 신한은행에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1심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A 씨와 B 씨의 연령대가 다르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며 "신한은행은 과실로 B 씨 등의 불법행위를 방조했다"고 판단했다.
법원에 따르면, A 씨는 장기간에 걸쳐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뱅킹을 이용하지 않고 폰뱅킹만 사용했다. 하지만 A 씨의 갑작스러운 모바일뱅킹 이용신청이 이뤄졌고, 연이어 신분증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아 비대면 계좌 개설이 실패하는 일도 발생했다.
A 씨는 2011년 이후로 매년 직접 신한은행 영업점에 방문해 새롭게 정기예금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A 씨가 그간 사용하지 않던 모바일뱅킹을 신청하고, 비대면 방식을 통해 정기예금 계약의 해지 및 금원의 인출을 요청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신한은행은 정기예금 계약 해지에 관해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는 게 1심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2심은 "자금 이체 과정에서 신한은행이 예금 지급을 위해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로 B 씨 등의 불법행위를 방조했다거나 신한은행의 행위와 B 씨 등의 불법행위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비밀번호 변경 방법 문의자가 예금주나 기타 금융거래 고객 본인인지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비밀번호를 5회 이상 틀리게 입력해 잠금처리가 된 경우 이를 해제하거나 비밀번호를 변경하는 방법은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된 정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 씨의 모바일뱅킹이 처음 있었다는 것 만으로 신한은행이 위와 같은 거래가 불법 거래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