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오 페리시치

입력 2023-08-0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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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페리시치”

지난 시즌 토트넘 홋스퍼 소속 축구선수 손흥민이 유난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그의 팬들은 팀 동료인 이반 페리시치에게 책임을 돌렸다.

실제 페리시치와 손흥민의 호흡이 맞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다만, 이후 손흥민이 탈장 증상을 안은 상태로 시즌을 소화했으며, 시즌 종료 후 곧바로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손흥민과 팀의 부진이 온전히 페리시치만의 잘못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런 자초지종과는 별개로 ‘아오 페리시치’는 온라인상에서 애먼 남을 탓하거나 억지로 책임을 전가할 때 사용되는 밈으로 자리매김했다. 책임 전가의 대상을 ‘00시치’라 칭하는 식이다. 가령, “아오 알람시치 안 들리게 울려서 지각했네”라는 식으로 사용한다.

지난달 필에너지는 상장 당일 전환사채(CB) 청구권 행사를 공시했다. 상장 첫날 가격제한폭이 확대 적용돼 237% 뛰어오른 상황에서 이례적인 CB 청구권 행사로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공시 직후 투자자들의 비난과 비판이 쏟아졌다.

그런데 일부 투자자는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도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어떻게 이런 기업의 상장 심사를 통과시키고, 증권신고서를 승인해줬냐’는 것이다.

이에 금감원·거래소 등 기관 관계자들은 못내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CB 청구권은 상법상의 권리로 법적 문제 소지가 없어 상장 첫날에 행사한다고 해도 도의적으로는 비판할 수 있겠으나 막을 근거는 없다.

또한, 증권신고서상으로도 CB 관련 오버행 우려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지적해 해당 부분이 강조된 바 있다. 결국, 투자 전 증권신고서의 투자위험요소 부분만 읽었더라면 예상할 수 있던 이슈였던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장 첫날 CB 전환청구권 행사가 마냥 정당하다고는 볼 수 없다. 필에너지 측은 이후 전환청구권 행사를 통해 전환한 보통주 물량의 79%에 한 달간의 보호예수가 걸려있다고 정정공시했다.

어쨌거나 투자 판단은 본인의 몫이다. 설령 페리시치가 실제로 축구를 못했다고 하더라도 경기력적으로 탈장이라는 컨디션을 능가하는 악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근원적인 문제를 보기에 앞서 00시치만을 찾는다면 ‘남 탓만 하는 극성팬’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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