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는 국가권력을 법이라는 틀에 묶어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국가의 통치원리다. 이는 시민에 대한 지배원리이기도 하지만 통치자 스스로도 여기에 구속됨은 마찬가지다.
법치사회 하면 정의의 여신 디케의 양팔저울을 떠올리게 한다.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채 한 손에 평형을 이룬 양팔저울을 들고 다른 손에 칼을 든 모습이 우리가 그리는 이상형이다. 법의 가치인 형평이라는 말도 저울(衡)이 평형(平)을 이룬다는 말로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함을 뜻한다. 법치가 공정하다는 것도 디케상이 제대로 작동될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법이 시민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사회는 진정한 법치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이는 법 우월사상과 그에 따른 운용에서 비롯되는 바가 커 보이지만 한편으로 법률용어의 그릇된 사용과 인식도 한몫한다.
경찰, 검찰에서 사건관계자를 ‘소환’한다는 말이 흔히 쓰인다. 일상어에 가까운 소환이라는 용어는 출석요구와 유사하나 그 주체 및 쓰임새가 다르다. 소환은 특정한 시간 장소에 출석을 명령하는 법원 재판으로, 법원에서 사용하는 법률용어다. 강제성을 띠며 불응하면 일정한 제재가 따른다.
반면에 수사기관의 피의자나 참고인 조사는 임의수사에 해당한다. 그 전제인 출석요구 또한 마찬가지다. 모두 피의자나 참고인의 의사에 따라 진행됨을 말한다. 출석요구에 불응하는 피의자에 대하여는 법원 판단을 받아 영장에 의하는 수밖에 없다. 참고인의 출석요구 불응에 대하여는 필요하면 기소 전이라도 법원을 통한 증인신문이 가능하다.
수사기관과 법원의 언어가 확연히 구별됨에도 수사기관은 피의자에 대한 출석요구에서 소환이라는 말을 관행처럼 사용해 왔다. 언론도 이를 여과 없이 받아 써온 경향이 있다. 수사기관이 법을 몰라서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오랜 세월 관행적으로 써온 탓이 클 것이다. 일상에서도 이 말을 흔히 접할 정도다.
문제는 사소한 일상의 그릇된 언어사용 관행이 수사기관인 검찰과 법원을 동일시하는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데 일조한다는 점이다. 행정부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는 수사기관과 사법부를 구성하는 헌법기관인 법원의 지위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법치사회는 일상적 법 용어의 올바른 사용에서부터 출발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 법이다. 소환이라는 용어 외에도 구속과 같이 그릇된 인식으로 그 본래 취지가 심각하게 왜곡되는 예가 더러 있다. 법을 해석해 사건에 적용하는 우리 법제는 법률가에게도 어려움의 대상이며 고무줄 해석의 소지를 안고 있다. 법에 대한 일반 시민의 정확한 이해를 기대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런 이유로 국회는 법을 알기 쉽게 만들고, 정부는 정확히 집행할 필요가 있으며, 사법부는 쉽고 간결한 말로 재판해야 한다. 시민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시민은 거창한 섬김을 바라지 않는다. 사소한 것부터 실천하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