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역대 최고 시가총액을 기록했던 코스닥은 26일 하루에만 70포인트 등락을 거듭한 끝에 전일 대비 4.18% 하락하면서 900.63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장중 900선이 무너지기도 했고, 코스피도 유사한 흐름을 보이다가 전날 대비 1.67% 내린 2592.36을 기록, 2600선을 내줬습니다.
이날 코스닥시장의 거래대금은 26조2002억 원으로 집계됐는데요. 2020년 8월 27일(20조8487억 원) 이후 하루 거래대금이 역대 최고 규모를 경신하게 됐습니다. 코스피도 거래대금이 역대 3번째로 많았죠. 이날 총거래대금은 36조74억7900만 원으로, 926일 만에 30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종목별로 보면 단연 2차전지 주 움직임이 두드러졌습니다. 에코프로는 장중 153만9000원까지 오르면서 최고가를 다시 써냈죠. 에코프로비엠은 장중 58만4000원까지 상승하면서 시가총액 57조 원을 돌파, 시가총액 4위인 POSCO홀딩스를 넘기도 했습니다.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을 합산한 시가총액은 이날 고가 기준 98조 원에 달하면서 SK하이닉스를 뛰어넘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오후 들어선 낙폭이 확대됐고,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 주가는 전날보다 각각 5.03%, 1.52% 하락으로 마감했습니다. 하루 변동 폭은 무려 각각 31%, 34%에 달했는데요. 오늘(27일)도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에코프로는 ‘황제주’(주당 100만 원이 넘는 주식) 자리까지 내주게 됐습니다.
이처럼 큰 변동 폭은 숏 스퀴즈에 따른 주가 상승과 대량의 차익 실현 물량으로 인한 하락 영향으로 분석됩니다. 전날엔 ‘한 큰손 투자자가 8000억 원을 한꺼번에 매도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개미들의 패닉 셀(공포에 의한 매도)이 이어졌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진위가 확인되진 않았으나, 대량의 개인 투매로 주가가 급락한 건 사실입니다. 이에 주식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배신자’에 대한 앙심(?)도 엿보이고 있습니다.
2차전지 투자 열풍은 국내 증시를 이리저리 움직였습니다. 2차전지 강세에 힘입은 코스닥시장은 연일 시가총액 최대치를 경신해왔죠.
특히 에코프로를 중심으로 한 2차전지 주에 대한 개미군단의 높은 관심은 ‘과열’ 경고까지 불렀습니다. 연초 11만 원대였던 에코프로는 1000% 넘게 폭등하면서 황제주로 등극, 국내 주식시장에서 가장 비싼 주식이 됐습니다. 주식 관련 커뮤니티에선 에코프로의 높은 수익률을 인증하는 글이 잇따랐고, “에코프로 안 사서 ‘벼락 거지’ 됐다”고 토로하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뒤처짐을 우려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황급히 매수에 나서는 추격 매수도 횡행했습니다. 혼자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로 ‘일단 사고 보자’는 반응 역시 속출했는데요. 온라인 투자방에서는 주식 거래 시간도 모르는 한 투자자가 에코프로에 투자한 사례도 발견됐습니다. 그만큼 에코프로가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개인 투자자들은 다른 2차전지 업종을 찾아 나서기도 했습니다. 에코프로 주가가 100만 원을 넘긴 만큼, 추가 상승을 기대하기보단 ‘제2의 에코프로’를 찾기 위해 눈을 돌린 건데요. 이 투자 열풍은 ‘2차전지만 붙으면 오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포스코가 그룹 핵심 사업을 철강에서 2차전지 원료·소재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하자 지주사인 POSCO홀딩스의 주가도 불타올랐죠. 이달 들어서만 38만8000원에서 65만8000원으로 70% 가까이 급등했고, 같은 기간 시가총액 역시 32조8136억 원에서 55조6479억 원으로 23조 원 가까이 불어났습니다. 코스피 시총 순위도 9위에서 4위로 뛰어올랐죠.
그러나 2차전지 대표 종목들은 하루에 20%가 넘는 변동성을 보이면서 뒤늦게 매수에 뛰어든 투자자들의 손실을 불렀습니다. 에코프로뿐 아니라 POSCO홀딩스도 롤러코스터와 같은 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요. 전날 POSCO홀딩스의 고점 대비 저점 변동률을 살펴보면 21.6%로 장중 가격제한폭에 가까운 수준을 보여줬습니다. 에코프로처럼 장 초반엔 급등세를 보이다가 오후 들어선 주가가 급락했죠. 금양(34.59%), 포스코퓨처엠(24.64%) 역시 마찬가집니다.
특정 악재나 이슈가 있기보다는 그간 2차전지에 쏠린 극심한 수급 쏠림 현상이 변동성을 키웠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실로 2차전지 관련주들은 꾸준히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해왔죠.
일각에서는 2차전지 열풍이 2018년 셀트리온 쏠림 현상을 연상케 한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2017년 3월 8~9만 원대를 오가던 셀트리온은 2018년 ‘바이오 붐’이 일면서 36만 원까지 주가가 껑충 뛰었습니다. 주가수익비율(PER)이 100배를 넘을 만큼 과열 양상을 보이던 셀트리온이었지만, 현 주가는 절반 넘게 떨어져 15만 원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코스닥지수는 4월 고점을 돌파했지만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에이치엔 등 ‘에코프로 3형제’를 제외한 코스닥지수는 아직 직전 고점을 넘기지 못했다”고 짚었는데요. 이어 “코스닥150 지수 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흐름이 이어져 쏠림이 가속화되고 있다. 2000년 IT 버블 이후 (코스닥 지수가) 평가가치 기준 역사적 과열권에 진입했다”며 “코스닥150 동일가중지수(지수 구성 종목의 편입 비중을 시가총액 규모와 상관 없이 동일하게 구성한 지수) 상대 강도는 셀트리온 3형제에 대한 쏠림이 극심했던 2018년 초반 수준까지 급락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만큼 특정 종목으로 관심이 쏠렸다는 겁니다.
2차전지는 하반기 주요 산업군으로 평가받지만, 실적 등과는 별개로 현 주가 수준이 과도하게 오른 상태라 추가 조정 가능성이 있다는 게 증권가 전망입니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27일 “최근 2차전지 관련 기업의 실적 전망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실적 기대치의 변화는 없는데 주가가 먼저 움직인 모양새다. 반면 2차전지를 제외한 다른 코스피 기업의 실적 전망은 개선 중”이라며 “시장이 언제쯤 안정화할지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숫자(실적)를 보면 2차전지 말고 다른 산업을 사라는 신호가 뚜렷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널뛰기 장세가 끝이 아니라는 전망도 나오는데요. 최근 2차전지 주에 큰 쏠림 현상이 나타난 만큼 증시 불확실성이 커졌고, 이에 급등과 급락이 반복되는 혼란스러운 장세가 수차례 더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의 주가수익비율(PER)은 각각 858.14배, 157.93배, 366.73배에 달하는데요. 내재가치 대비 평가 가치(밸류에이션)를 측정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의견이 나오죠.
여기에 ‘빚투’(빚을 내서 투자)가 급증했다는 것도 우려를 더합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5일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20조596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투자자가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빌려 투자한 뒤 갚지 않은 금액인데요. 이 금액이 20조 원을 돌파한 건 4월 이후 3개월 만입니다. 올해 신용거래융자는 연초 16조 원 규모에서 매달 증가하면서 4월 말 20조 원을 넘어섰으나, 곧바로 ‘SG증권발 하한가 사태’를 계기로 주춤했습니다. 5월 18조 원대로 하락했던 신용거래융자는 지난달 중순 다시 19조 원을 돌파했죠.
빚투 자금은 대부분 2차전지 관련주로 유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1월부터 이달 25일까지 개인 투자자가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POSCO홀딩스로, 무려 7조8050억 원어치를 순매수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에코프로(9259억 원)와 에코프로비엠(6886억 원)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죠. 특히 포스코 그룹주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5월부터 일제히 급증했는데요. POSCO홀딩스를 비롯한 포스코그룹 6개 종목의 빚투 규모도 1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문제는 투자 심리가 위축돼 반대매매가 확산할 경우 주가가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겁니다. 큰 손이 대량의 차익 실현 물량을 던진다면, 여유자금이 아닌 빚투 자금으로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은 반대매매에 대한 공포감으로 일제히 매도세를 보일 수 있고, 주가 낙폭이 확대되면서 증시를 더 끌어내리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죠.
27일에도 에코프로 주가는 하락을 거듭하더니 오후 3시께 100만 원 선까지 붕괴됐고, 전일 대비 20% 가까이 급락한 98만5000원에 장을 마쳤습니다. 에코프로가 100만 원 이하로 주가가 떨어진 건 8거래일 만입니다.
8월 주식시장 역시 높은 변동성을 가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데요. 일각에서는 매도 자금 역시 사상 최대 규모로 늘어난 만큼, 시장이 안정화될 때까지 관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강민석 교보증권 연구원은 “FOMO 현상으로 인한 수급 유입과 고밸류 부담으로 인한 공매도 자금 간의 세력 다툼이 지속되며 증시 변동성은 여전히 클 것으로 판단된다”며 “단기 수급을 따라가기보단 차분히 산업과 기업들의 기초 여건(펀더멘털)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된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