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 계신 우리 아버지”…삼성전자, ‘9층 구조대’ 이번엔 오나요 [이슈크래커]

입력 2023-05-25 16:59 수정 2023-05-2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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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시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시스)
“올해 안에 9층 구조대가 출동할 수 있을까요”

삼성전자가 장중 7만 원 선을 기록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일 대비 300원(0.44%) 오른 6만88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장 초반 7만 원을 터치하며 52주 신고가를 쓰기도 했는데요. 장중 고가 기준 삼성전자가 7만 원대를 넘어선 건 지난해 3월 31일(7만200원) 이후 약 1년 2개월 만입니다.

앞서 최고가 행진을 이어오며 ‘믿고 사는 대장주’ 평을 들어오던 삼성전자. 그 위상은 한때 ‘10만 전자’를 노릴 정도였습니다. 2021년 1월 15일 삼성전자 주가는 사상 최고가인 9만6800원을 찍으며 환호를 자아냈습니다. 이때 증권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주가가 오르기를 간절히 바라는 ‘삼기도문’이 확산하기도 했는데요. “수원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한국거래소에 임하옵시며, 뜻이 삼만 전자에서 이룬 것 같이, 십만 전자도 이루어지나이다. (…) 우리를 패닉셀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95층에서 구하옵소서. 삼성의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이폰.”

주기도문을 패러디한 삼기도문에는 ‘10만 전자’를 향한 개미들의 간절한 바람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후 삼성전자 주가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10만 전자’를 기원하는 목소리도 ‘살려달라’는 곡소리로 변했습니다. 반도체 시장이 냉각되면서 삼성전자 주가도 내리막길을 달린 건데요. 지난해 말엔 5만 원 선까지 추락하며 ‘개미의 무덤’이라는 오명까지 써야 했죠.

이랬던 삼성전자 주가가 강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목표 주가도 상향되면서 개미들 사이에서는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과연 삼성전자는 국민주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주 강세…AI 열풍 힘입어

이날 삼성전자 주가 상승은 시간 외 거래에서 급등한 미국 기업 엔비디아 영향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날 뉴욕증시 시간 외 거래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정규장 종가보다 25.71% 급증한 383.88달러, 우리 돈으로 50만7105원에 거래됐습니다. 엔비디아는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2분기 매출 110달러, 우리 돈으로는 14조5310억 원 안팎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는데요. 월가 전망치는 71억5000만 달러였습니다. 시장 예상치를 50% 이상 웃돈 겁니다.

엔비디아는 글로벌 1위 그래픽처리장치 업체로, 글로벌 시장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는 대부분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죠. 챗GPT가 불러일으킨 AI 시장의 성장 기대감에 엔비디아 주가는 올해에만 100% 넘게 치솟았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급증하는 데이터센터 칩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공급을 크게 늘리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엔비디아의 어닝서프라이즈가 국내 반도체주에도 훈풍으로 작용한 것으로 읽히는데요. SK하이닉스도 이날 장 초반 ‘10만 닉스’를 달성했죠. SK하이닉스가 장중 고가 기준 10만 원을 넘은 건 지난해 7월 29일 이후 약 10개월 만입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시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시스)
삼성전자, 1분기 ‘4조 원대’ 적자…전문가들 “하반기 이후 반등 올 것”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반도체 부문 4조5800억 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분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갤럭시S 23시리즈의 판매 호조로 전사 기준 영업손실은 면했지만, 전년 동기 대비 올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8.1% 감소한 63조7454억 원, 95.5% 감소한 6402억 원으로 나타났습니다. 분기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밑돈 건 세계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분기(5900억 원) 이후 14년 만입니다.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D램의 경우 서버 등 고객사 재고가 많아진 점이 악영향을 줬습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 감소와 파운드리 가동률 하락이 원인”이라고 설명했죠.

실적악화에도 최근 반도체 업황에 대한 개선 기대감과 함께 AI 붐이 일면서 주가도 상승세로 돌아선 모습인데요. 생성형 AI용 반도체 판매를 포함한 데이터센터 사업 부문 매출액은 42억8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4% 증가했습니다. 엔비디아를 포함한 AI 산업이 전반적으로 조명받으면서 반도체도 불황에서 벗어난 거죠.

또 삼성전자는 반등에 필요한 조건을 이미 갖춰놨다는 분석입니다. 통상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설비투자 감소→전방산업 재고 축소→반도체 수요 증가로 회복 사이클이 진행되는데, 삼성전자는 지난달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인위적 감산 방침을 밝혔죠. 감산에 따른 전방산업 재고 축소를 선언하자 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찍었다는 인식이 퍼졌고, 반등에도 기대감이 실린 겁니다. 외국인 매수세도 강해졌습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전날까지 외국인의 순매수 금액은 11조 3640억 원인데, 이 중 9조1983억 원이 삼성전자에 쓰였습니다. 이달로 좁혀보면 외국인은 삼성전자 1조3000억 원어치를 순매수하면서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습니다.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주가가 하반기부터 본격 상승세를 달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메모리 생산량을 하향 조정하겠다고 발표한 만큼, 수급에 긍정적일 것이란 분석이죠.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목표주가로 9만 원을 제시했고, HSBC는 기존 7만5000원에서 8만8000원으로, 노무라는 기존 7만1000원에서 8만2000원으로, 골드만삭스는 7만4000원에서 7만7000원으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3분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수요와 공급 균형이 이뤄지고 4분기부터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며 “이 사이클(메모리 반도체 업황의 반등)을 넘어서는 AI 파동이 올 수 있다”며 기존 7만 원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중 가장 보수적인 목표주가입니다.

9만 원으로 목표주가를 올려잡은 증권사도 많습니다. 유진투자증권은 최근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중심으로 큰 폭의 실적 개선이 가능하다고 보며 기존 8만2000원에서 9만 원으로 목표주가를 올렸습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여전히 불확실한 매크로와 지정학적 변수들이 미해결 상태지만, 메모리 반도체는 감산이라는 카드로 충격을 흡수하면서 업황 반전을 꾀할 것”이라며 “아직 실적 반등 조짐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주가 변화는 실적 변화에 선행하기에 조만간 실적도 주가 반등을 따라 최악의 시점을 통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유안타증권, IBK투자증권도 목표주가를 9만 원까지 상향 조정했죠.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9만 전자’ 갈 수 있을까…일각에선 올해 안엔 어렵다는 관측도

반도체 업황의 우호적 흐름이 3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투자 의견은 대부분 긍정적인 상황입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25일 올해 글로벌 D램 공급량이 2Gb(기가비트) 칩 환산 기준 1043억6200만 개로 총수요 1054억1900만 개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특히 7월부터는 수요가 공급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는데요. 지난달 보고서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웃돌 것으로 봤으나, SK하이닉스 등에 이어 삼성전자도 감산에 나서면서 D램 물량이 감소, 하반기부터는 반도체 수요가 일부 회복할 거라는 분석을 내놓은 겁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올해 안에 ‘9만 전자’ 실현은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합니다. 호황기 이후 진입한 개미들이 상승세를 타고 강한 매도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인데요. 전날에도 삼성전자 주가는 장 중 한때 6만9000원까지 올랐지만, 이후 대규모 차익실현 물량이 쏟아지면서 상승세를 내줬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갈등도 하반기 수요 회복의 암초로 작용합니다. 중국은 21일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 반도체에서 보안 위협 문제가 발견됐다며 구매를 금지했는데요. 구체적인 원인 등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어 ‘기습 공격’, ‘보복성 조치’ 등의 평가가 외신에서 나옵니다.

마이크론이 중국 시장에서 퇴출되면 반사이익을 보는 업체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우선 언급됩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출하량의 40%를 생산하고 있고, 쑤저우의 후공정 공장도 운영 중입니다. SK하이닉스도 우시 공장에서 전체 D램 출하량의 절반을 만들고 있고, 다롄 공장에서는 낸드플래시 20%를 생산 중이죠. 그러나 중국은 미국 반도체의 공백을 메울 기업으로 자국 기업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이는데요. 중국 정부는 낸드메모리 대표 업체인 양쯔메모리에 우리 돈으로 수조 원을 투입해 지원하는 등 중국산 반도체 시장을 확대해나갈 방침입니다.

또 미국이 우리 정부에 중국의 제재로 인한 공백을 한국 기업에 메우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우리 기업은 중국 공장 첨단장비 반입 제한 조치와 반도체 생산설비 보조금과 관련해 미국과 협상 중에 있어, 이 같은 요청을 섣불리 거절하기도 어렵습니다.

이에 미·중 반도체 갈등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은 딜레마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미국과 손을 잡으면 세계 반도체 시장 24%를 차지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잃을 수 있고, 반대로 중국 내 사업에 집중한다면 원천 기술을 보유한 미국 정부의 강력한 제재까지 우려되는 상황인 거죠.

우리 반도체가 다시 호황기로 접어들 것이라고 확언하는 것은 아직까진 조심스럽습니다. 우선 재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중국 경제활동 재개(리오프닝) 효과는 미미, 미·중 반도체 전쟁 사이에도 낀 미묘한 상황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번에 ‘7만 전자’를 맛보면서 시장에서는 ‘8만·9만 전자’ 가능성이 재차 거론되고 있습니다. 과연 삼성전자는 올해 ‘9만 전자’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반등의 기회가 포착된 만큼, 개미들의 기대도 연일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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