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건축왕’ 남모 씨에 대해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된다고 한다. 남 씨는 지난해 전세보증금 125억 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지난달 구속됐다. 수사기관이 확인한 남 씨의 공범만 60명을 넘는다고 한다. 서울에서도 별도의 전세 사기 사건 가담자 10명이 형사입건 조치됐다. 부산, 대전, 동탄 등지에서도 무더기 입건 사례가 나오고 있다. 남 씨 일당 외에도 엄중히 대처해야 할 민생 파괴 조직이 수두룩하다는 뜻이다.
전세 시장의 혼란과 불안이 마른 들판의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전세 사기 피해자를 도울 법제적 처방 마련이 급하고, 사기 조직의 적발과 처벌에도 엄중히 임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서민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하던 전세제도가 왜 사기의 온상으로 전락했는지도 차제에 명확히 들여다보고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는 대신 긴급 대책에만 치중하면 우리나라 특유의 전세제도는 계속 조직범죄의 먹잇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보다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본지는 어제 1면 보도를 통해 전세 사기 피해가 속출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과도한 전세자금대출이 꼽힌다고 지적했다. 실제 많은 전문가가 이 대출제도의 무분별한 도입과 확대가 사회적 재난을 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깔려 있다고 한다. 전세대출이 딱 그렇다. 이 제도는 이명박 전 대통령 때 사회적 약자인 세입자들을 돕는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정권이 이어지면서 대출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고 결국은 전세 사기의 먹잇감이 됐다.
전세자금대출 규모는 2008년 4조 원대에서 2017년 말 51조 원, 2021년 166조 원으로 눈덩이처럼 커졌다. 시장원칙에 반하는 선심정책은 늘 이런 결과를 빚는다. 이 같은 급증세가 전셋값과 주택가격 급등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뿐이 아니다. 이른바 ‘무자본 갭투자’ 열풍의 밑거름이 됐고, 전국적 규모의 조직적 사기극까지 불렀다. 사회적 기업 에듀머니가 그제 국회사무처에 제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전세자금대출 규모는 173조 원에 달한다. 2030세대 비중이 57%로 규모가 99조30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사회적 중지를 모아 출구전략을 찾는 수밖에 없다. 이 제도의 부작용과 역기능이 크다 하더라도 이 제도에 힘입어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이들이 많은 만큼 정교하게 비중을 줄이고 폐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퇴로를 여는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시장 원칙을 파괴하는 날림대책을 내놓는 대신 근원적 제도 개선에 힘을 모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