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눈치 없는 은행, 사고 치는 증권사

입력 2023-03-16 14:44 수정 2023-03-1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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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은행들은 너무 눈치가 없어요. 정부에서 때리기 딱 좋게…그래도 사고는 안 치니까요”

최근 만난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에게서 들은 말이다. 10년 넘게 잠들어있던 증권업계의 ‘법인지급결제’ 문제를 다시 깨운 것은 은행권의 돈 잔치 논란이었다. 은행들이 이자 장사로 쉽게 번 돈을 성과급에 쓴다는 비판 여론이 커진 것이다. 법인지급결제가 허용될 경우 증권사와 은행 간 법인 계좌 유치 경쟁이 붙으면서 은행권 과점 체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나온 방안이다.

법인지급결제는 증권업계의 숙원 사업이었다.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2006년 이후 현재까지 증권사 계좌를 통한 송금은 자산관리계좌(CMA) 등 개인투자자에게만 허용되고 있다. 기업은 은행의 가상계좌를 거쳐야만 이체 업무가 가능하다. 법인지급결제가 허용되면 증권사는 은행을 통하지 않고도 공과금 납부, 직원 급여 지급 등을 처리할 수 있다. 증권사로서는 개인 고객보다 자산과 덩치 측면에서 모두 방대한 시장이 열린다는 관측이다.

문제는 증권사의 반복되는 시스템 리스크다. 2020년 초 대규모 ELS 마진콜 사태, 지난해 하반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최근 몇 년간 국내 금융경색 사건의 대부분은 증권사에서 비롯됐다. 그때마다 증권사는 당국 등이 공급한 자금으로 회생했다. 위기를 관리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난 몇 년간 부동산 호황기 때는 PF로 쉽게 돈을 벌고, 억대 성과급 잔치도 벌여놓고서 시스템 리스크가 닥칠 때마다 정부에게 살려달라고 외친 셈이다. 이런데도 증권업계에서는 “이번 법인지급결제만 허용되면 우리는 앞으로 3년 먹고 놀아도 된다”라는 이야기까지 들려오고 있다.

물론 기업금융과 IB(투자은행) 사업 기회를 확장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법인지급결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유동성 관리에 번번이 실패해온 증권사들을 보면 덜컥 법인 지급 결제를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리콘밸리뱅크(SVB) 크레디트스위스(CS) 등 대외적으로 겹악재가 끼면서 금융시장의 불안이 증폭되고 있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적합한 논의는 더더욱 아니다. 눈치 없는 은행이 얄밉다고 더 많은 사고를 치고 있는 증권사에 힘을 실어 주는 꼴이다. 증권사들이 과거의 사고를 반면교사 삼아 시스템 리스크 대응할 수 있는 내실을 먼저 키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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