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하게도 상급의 다이아몬드 광산을 품은 지역에선 오히려 이를 차지하기 위한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이 끊이지 않았고, 그만큼 혹독한 강제노동이 이루어졌다. 실상은 영화보다 더욱 비참했다. 폭력적인 강제노동을 유지하기 위한 폭압정치로 수많은 주민들은 손발까지 잘리는 참상을 겪어왔다. 이와 같이 피로 얼룩진 다이아몬드를 ‘블러드 다이아몬드’라 칭한다.
다이아몬드를 캐낸 광산마다 무수한 피가 숨겨져 있지만, 이의 이권에 가담한 유럽 등 선진국 기업들의 강력한 카르텔에 의해 피의 다이아몬드는 여전히 누군가의 손가락에서 빛나고 있다.
2023년 현재 국제기구 활동과 노동권에 대한 관심 확산으로 노동환경의 개선이 진전되고 있으나, 전 지구상 다양한 산업에서 약 2500만 명의 강제노동이 자행되고 있으며 1만6000만가량의 아동노동 또한 존재하고 있다.
올해도 달콤한 초콜릿을 건네며 사랑을 고백한다는 밸런타인데이에 관련 산업은 높은 매출액을 올렸다. 금빛의 동글동글한 모양, 달콤한 초콜릿과 견과류의 식감으로 오랜 기간 초콜릿을 판매하는 점포에서 단연 눈에 띄는 위치에 자리한 한 이탈리아 기업 페레로(Ferrero)에 관한 뉴스는 충격적이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의 보도에 따르면, 페레로 초콜릿과 견과류의 주요 원료인 헤이즐넛을 수확하기 위해, 개암나무 덤불 사이를 잘 헤치며 작은 손을 사용할 수 있는 13세 이하 아동노동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에 투입된 아동은 하루 10시간씩의 고강도 노동을 견뎌야 한다. 특정 수확기간에만 필요한 계절노동 형태로 투입되는 노동력은 성인도 견뎌내기 힘들며 매우 낮은 일시 임금으로 고용되고 있다.
영롱한 황금빛 포장지로 제법 비싼 값에 팔리는 이 초콜릿은 그동안 지속 가능한 노동, 정당한 생산과정을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음을 홍보해 왔다. 이와 같이 원료의 수확, 채취 및 생산과정, 기업의 공급망에서 강제노동이 발생한다 해도 판매 기업이 깨끗한 이미지로 포장하여 홍보를 한다면 소비자는 이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이에 유럽연합(EU)은 기업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노동, 환경 등의 지속가능성 또한 판매 기업이 실사 의무를 갖고 책임지도록 하는 법안의 입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해당 입법은 두 가지로, ‘기업의 지속가능성 실사에 대한 지침(CSDD)’과 ‘강제노동으로 만든 제품에 대한 역내 금지 규정’이다.
CSDD가 도입되면 유럽에서 활동하는 기업은 실사 의무를 기업 정책에 통합하여 사내 실사 규정(due diligence policy)을 마련하고 매년 이를 업데이트해야 하며 회사 및 자회사, 가치사슬에 속한 기업의 경영활동 과정에서 초래되는 인권 및 환경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파악해야 한다. 나아가 기업은 확인된 부정적 영향을 방지, 완화, 개선하기 위한 실행계획을 마련하여 이행해야 하고, 불만처리절차 수립, 모니터링, 실사결과 공개 등의 의무를 지게 된다.
CSDD 입법에 대해 EU 관련 기관들의 최종 동의가 2024년 상반기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기업 실사 의무가 유럽에서 선제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기구에서 관련 사항에 대한 이행 권고가 이어져 왔다. 대표적으로 2011년 유엔(UN)에서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이 채택되었으며,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업실사지침 권고사항에 회원국들이 동참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우선 국내기업 실사의무지침 도입, 기업의 비재무적 지속가능보고서 작성의무 계도 및 법제화, 그리고 강제노동 규제에 대한 포괄적 입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내 가이드라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서 우리나라도 이에 대한 적극적 참여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