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설의 노동직설] 권력형 노조비리 근절이 진정한 노동개혁

입력 2023-03-09 05:00 수정 2023-03-11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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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

“촛불시위와 같은 대형 파업을 벌일 때가 노동조합들이 뒷돈을 챙길 좋은 기회다. 규모가 큰 대기업 노조의 경우 김밥, 플래카드, 팻말, 버스 대절비 등을 합하면 파업비용이 몇억, 몇십억 원에 달한다. 많은 노조에게 큰 전쟁(파업)일수록 큰 기회로 작용한다.” 민주노총 산하 대기업 노동조합에서 위원장을 지냈던 한 노동운동가는 얼마 전 전화 통화에서 대표적인 노조비 비리유형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노조비만 깨끗하게 써도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상당히 발전할 것”이라며 “노조비의 회계투명성 확보가 노동개혁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평조합원은 문제 제기 못하는 상황

노동운동의 기본은 도덕성과 투명성이다. 하지만 많은 노조에서 회계가 불투명하고 노조간부들이 비리에 연루된 경우가 많다. 문제는 노조간부들에게 권력이 집중되다보니 웬만한 노조비 유용에 대해 일반 평조합원들은 문제를 제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회사는 노사관계의 안정을 위해 노조간부에게 각종 편의와 특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집행부는 산업평화를 약속하며 회사 측과 결탁해 각종 인사에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에 “노조 회계감사에 이의를 제기하면 위원장이 해고 협박을 하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는 신고가 접수됐을 정도다. 이 신고센터에는 조합원 폭행·괴롭힘, 깜깜이 노조 재정, 조합비 부당 집행 등 노조 지도부의 불법 행태와 갑질 신고가 빗발쳤다. 그만큼 우리나라 노조가 권력화돼 있고 구조적으로 썩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노조의 비리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노조간부들이 조합원 티셔츠나 운동복 선물 등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납품업자와 결탁해 금품을 수수하거나 하청업체로부터 구매 지원을 대가로 금품을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노조간부의 채용청탁을 들어주다 검찰에 적발되는 경우도 많다. 기아차 광주공장 노조 간부가 2005년 회사와 담합해 공장에 취업하려는 노동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뒤 취업청탁을 들어주기도 했다. 노조전임자 임금, 노조 사무실, 비품집기, 전화 전기 수도 방송 차량편의뿐 아니라 노조 업무출장비까지 회사로부터 지급받는 것을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여기는 노조도 많다.

양대 노총, 회계투명성 요구 거부

외부로부터 노조비 회계감사를 받으려는 노조는 거의 없다. 노조위원장이 조직 혁신 차원에서 이를 밀어붙여도 내부 강경파들의 반대가 심해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노조비는 간부들의 비공식적인 술값, 밥값으로 많이 쓰이는데 외부감사를 받게 되면 노조비 유용에 많은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노조들은 노조전임비나 출장비 등을 회사로부터 지원받는 행위에 대해 자주성을 유지한다며 스스로 자위한다고 한다. 참 어처구니없는 인식들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다보니 수구세력이란 비아냥거림을 듣는 것이다.

노조의 조직적인 비리행태가 판을 치는데도 민주노총·한국노총은 정부의 회계 투명성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국고를 지원받고도 회계장부 공개를 거부하며 노조탄압이라고 주장하는 행태는 적반하장이다. 정부의 회계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흔드는 행태다. 미국·영국처럼 노조의 수입·지출·자산 내역을 공개하고 외부 감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노동개혁의 출발점은 노조 회계 투명성”이라며 “국민 혈세인 수천억 원의 정부 지원금을 사용하면서 법치를 부정하고 사용 내역 공개를 거부한 노조에 대해선 단호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제 노조 재정의 투명성 제고와 노조간부의 도덕성 확보는 노동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명제다. 노조는 자기반성을 통한 내부개혁에 나서야 한다. 노동운동을 민주적이고 자주적으로 할 의지와 용기가 없다면 아예 노동운동을 그만두는 편이 낫다. 기업이나 정부에 손을 벌리고 부패와 비리행위를 일삼는 노동운동은 선진국에선 발붙이기 어렵다. 무엇보다 노조 스스로가 이 같은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노조들도 회계투명성과 도덕성 확보를 통해 건전한 노동운동 정착에 나섰으면 한다.

upyk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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