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정치 팬덤이 끼치는 부작용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기 전에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정치 팬덤을 논하는 언론인, 정치인, 학자들이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첫째, 정치 팬덤을 어떻게 정의(define)할 것인가? 둘째, 정치 팬덤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가? 셋째, 정치 팬덤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가?
정치 팬덤이라는 용어는 그 사용 빈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개념 정의에 대한 합의가 없다. 심지어 아예 개념 정의의 시도조차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특정 정치인을 열렬히 지지하는 유권자’ 정도로 정의 내리기에는 이미 정치 팬덤이 너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애매하게 정의 내리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명하는 성실한 당원, 정당 지지자, 정치 고관여층 등과 구분하기 어렵다. 기존에 사용하던 개념들과 별 차이가 없다면 굳이 정치 팬덤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특정 정치인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과거의 사람들과 지금의 정치 팬덤이 하나의 개념으로 묶인다면 팬덤 정치를 제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왜 하필 이 시점에 고민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정치 팬덤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의되지 못하니, 전체 유권자 중에서 정치 팬덤의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하는 작업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정치 팬덤이 현재 한국 정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인이 되려면 그 비율이 꽤 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계열적으로 보았을 때 과거보다 지금 규모가 더 커야, 최근 문제시되는 정치 양극화 논의와 맞물려 비중 있는 연구 대상이 된다. 반대로 정치 팬덤의 규모가 미미하다면 큰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예나 지금이나 극단적인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은 늘 있기 마련이고, 이들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길들이는 작업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치 팬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파악된 적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정치 팬덤의 폐해는 몇몇 정치인의 증언과 인상 비평 차원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정치 팬덤이 정당 내 의사 결정 과정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은 이루어진 바 없다. 정치 팬덤 때문에 당 대표와 최고위원 선출 및 공천에 왜곡이 생길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해 줄 근거도 아직까지는 충분하지 않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정치 팬덤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 자체가 없으니 신뢰할 만한 객관적인 분석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정치 팬덤이 실체가 없는 허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여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극소수의 유권자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내뱉은 극단적인 발언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고, 그것이 일부 언론과 정치인에 의해 증폭되는 과정에서 정치 팬덤의 영향력이 과장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치 팬덤은 한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특정 정치인, 정당, 정치 집단에 대한 반감이 너무나 큰 나머지, 그 반작용으로 그 정치인을 열렬히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권자들일 수도 있다. 즉, 정치 팬덤이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부 언론과 정치인에 의해 야기된 정치 양극화가 정치 팬덤이라는 부산물을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가능성이 고려되지 않은 채 정치 팬덤이 건강한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성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