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 간호사’ 논란, 직역간 대립 연관
겉만 보면 한 병원과 특정 의사협회 간의 분쟁으로 보이는 이 문제 속에는 사실 상당히 복잡한 보건의료 직역 간의 긴장관계가 숨어 있다. 2월 9일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되었다. 이에 해당 법 제정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크게 반발하며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반면 대한간호협회는 간호법이 간호사만을 위한 법이 아닌, 전문간호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간호인력 전체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고, 변화된 의료환경에 대처하기 위하여 필수적이라며 시급한 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PA 간호사 관련 분쟁도 이러한 직역 간의 대립과 연관이 없지 않다.
의협은 대형병원의 PA 간호사 고용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위법행위라고 주장한다. 간호사가 의사의 업무범위를 침해하여 보건의료 체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협의 주장은, 간호법 제정과 PA 간호사 채용에 반대하는 공통논리이다. 이에 반해 대형병원은 부족한 전공의를 대체하기 위한 PA 간호사 고용은 필수적이라 이야기한다. 대학병원조차 특정 전공에 대한 전공의 지원자가 부족하여 애를 먹는 상황 속에서, 기타 대형병원이 전공의를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대학입시생들이 그 어떤 학과보다도 의대를 선호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오랜 기간 의사 부족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사 시장은 자유경쟁시장의 수요공급 법칙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대표적 시장이다. 그러한 면에서 그 어느 시장보다 비시장적이라 할 수 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면허가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급에 구조적인 제한이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현재 정부는 의협의 반대로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그리고 전공의 부족 상황 속에서 의사에 대한 초과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그에 대응하여 정원을 늘리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의사 초과수요, 인력간 도미노 현상으로
의사에 대한 초과수요는 결국 보건의료 인력 간 수요의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졌다. 전공의 부족현상으로 간호사가 PA 간호사의 형태로 의사 직무까지 대체하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이는 간호사 인력의 손실로 이어져 간호조무사가 그 부족분을 대체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도미노와 같은 상황에서 PA 간호사는 ‘가짜 의사’ 취급을 받고 간호조무사는 ‘가짜 간호사’ 취급을 받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대중은 보건의료 인력 전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있다.
대중에게 간호법이라는 법안명이나 PA 간호사라는직무명은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건강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믿을 만한 보건의료 인력이 옆에 있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전문성이 핵심인 대형병원에는 전공의가 없고, 비상주 의사를 위촉하여 운영하는 지방 요양병원에는 간호조무사들만 있는 상황 속에서, 대중이 믿음을 가지고 의지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의사협회와 간호협회, 그리고 간호조무사협회 등 기타 보건의료 인력협회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 속에서 공공의 이익을 대변할 정부와 국회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한 상황이지만, 특정단체만을 대변하는 듯한 정치인들의 모습은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고등학생은 적성과 관계없이 기를 쓰고 의대를 가야 하고, 대형병원은 전공의를 뽑고 싶어도 PA 간호사를 뽑아야 하고, 각 의료직역협회는 간호법 제정에 목숨을 걸거나 결사반대를 해야 하는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의사의 진단을 받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병원을 찾는 대신 챗GPT 검색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