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식량난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북한은 1990년대 심각한 식량 위기를 겪고 난 이후 2000년대 들어 7·1 경제관리개선 조치와 함께 분조관리제를 개선하고 농업 인센티브의 확대를 기했으나 식량 부족 문제를 해소하지 못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당시 남북관계의 해빙 무드를 이용하여 매년 40만~50만 톤의 식량을 우리측으로부터 제공받는 데 주력하였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은 5·30 조치 등을 통해 협동농장의 자율경영제를 도입하고 장마당 등을 통한 식량 유통을 허용하는 듯했다. 그러나 2016년 핵무기 개발에 따른 대북 제재가 본격화되고 최근 2∼3년간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로 인해 해외로부터의 원조도 원활하지 못했다.
현재 북한이 겪는 식량난은 경험적 흐름에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북한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곡물의 사적 유통을 제한하기 시작하였다. 배급이 줄어들고 시장에서 쌀을 구입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공급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아사자가 발생할 개연성은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이러한 부작용을 노출하는 중앙집권적 식량공급 정책을 계속 추진해 나갈지는 이번 2월 말 당 전원회의 등의 결과를 보면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북한 정권이 주민들의 식량문제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면서 계속 핵 미사일 무기를 개발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중한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의 식량난이 북한 자체가 붕괴할 정도까지 심각한 것인가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중요한 것은 북한 상황에 대한 판단의 왜곡과 인식의 오류가 북한 붕괴론으로 연결된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식량난은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한 고난의 행군시기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 위기론에 입각한 북한 붕괴론이 우리의 대북정책 결정과정에 큰 줄기로 자리잡을 경우 대북정책의 유연성은 확보하기 힘들다. 특히 최근에는 북한이 ‘강 대 강’ 기조를 유지하고 전술핵무기 사용 등을 위협하는 과정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회의감과 피로감이 만연해 있다. 그러나 무한질주하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억지·안보뿐 아니라 부단한 대화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 붕괴론이 또다시 자리 잡게 되면 지난한 대화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북한을 무한 선의로 대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남북이 서로 전쟁을 운운하고 있지만 전쟁은 그야말로 공멸이라는 점에서 결국 문제해결의 해법은 대화밖에 없다. 남·북·미·중이 북핵문제 해결에 집중해야만이 지금 한반도에 드리워진 심각한 위기 상황을 해소할 수 있다.
최근 북한의 ICBM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 회의는 또다시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유엔 안보리 해결 무용론이 나올 만하다. 강대국들이 서로의 주장만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핵능력은 시시각각 증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붕괴론에 입각하여 현실적인 수단도 없는 북한 정권 교체론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북한의 핵능력이 통제할 수 없는 수준까지 도달하기 전에 이를 저지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북한의 식량 사정은 만성적이다. 기본적인 농업구조 개편과 농장 현대화 등이 없이는 북한은 식량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북한에 대한 대규모 인도적 협력과 함께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책전환을 심도 있게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담대한 구상에도 있듯이 우리 정부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주변국들을 끌어들여 북핵과 식량, 민생협력의 구체적 플랜을 만들 수 있어야 한반도에 드리워지고 있는 신냉전의 파고를 넘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