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행위와 환자에게 발생한 상해‧사망 사이 인과관계가 인정되더라도 업무상 과실로 평가할 수 있는 행위의 존재 또는 과실 내용이 구체적으로 증명되지 못했다면 의사의 업무상 과실을 추정하거나 함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병원장 A 씨의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A 씨는 2019년 7월 우측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의 어깨에 통증 치료제를 주사했다가 4주 정도 치료가 필요한 감염을 일으킨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환자는 A 씨가 맨손으로 소독도 하지 않은 채 주사했다고 증언했지만, A 씨는 이를 부인하면서 주사 때문이 아니라 다른 원인으로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1심은 환자 측 주장을 받아들여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2심 역시 항소를 기각하면서 A 씨가 시행한 주사 치료와 환자의 상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특히 2심은 “A 씨가 맨손으로 소독 없이 주사했다는 부분은 환자의 진술만 있을 뿐 증거가 부족하다”며 1심의 일부 판단을 뒤집고도 나머지 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했다. 비록 A 씨가 비위생적인 방법으로 치료했다는 점이 입증되진 않았더라도 주사 치료와 환자의 감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 유죄를 인정하는 건 충분하다는 게 2심 판단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시행한 주사 치료로 피해자에게 상해가 발생했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인정되지만, 피고인이 맨손으로 주사했거나 비위생적 조치를 한 사실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의 업무상 과실로 평가될 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도 원심은 주사 치료와 상해 사이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사정만으로 피고인의 업무상 과실까지도 쉽게 인정했다”면서 “원심에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