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처음 등장한 ‘코미디언’은 12만 달러(한화 약 1억4000만 원)에 팔리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일부러 허술하고 의미 없는 만듦새를 지향한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객관적인 잣대보다 주관적인 평가에 힘입어 초고가를 형성하곤 하는 미술품 시장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읽히기도 했다.
미술 정규교육 받지 않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가구 디자이너로 일하며 미술계에 몸담게 된다. 스스로를 ‘침입자 컴플렉스’를 지닌 인물로 칭하면서 기성 미술계 관행에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동시에 그런 작업에 대한 두려움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해 가고시안 갤러리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그는 "조만간 내가 초대받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그들이 나를 예술계 밖으로 내던질 것"이라면서 "쫓겨나는 게 두렵다"고 언급했다.
30일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WE’ 언론 소개회에 참석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이름을 들으면 바로 바나나를 떠올릴 정도로 유명하지만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소개된 적 없는 작가”라면서 “그의 작업 세계가 어떠한지, 왜 유명해지게 됐는지, 아트바젤에서 설치한 바나나가 어떻게 1억 원 넘는 가격에 팔릴 수 있었던 건지에 대한 답을 이번 전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아홉 번째 시간’, ‘그’, ‘모두’, ‘무제’ 등 조각, 설치, 벽화, 사진 등 38점이 전시된다. 90년대 활동을 시작해 지난 30년간 내놓은 작업물을 엄선했는데,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100여 점을 전시한 회고전 ‘Maurizio Cattelan : ALL’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대표작은 운석에 깔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를 묘사한 ‘아홉 번째 시간’(1999), 어린아이처럼 작은 체구의 무릎 꿇은 히틀러를 형상화한 ‘그’(2001) 등이다. 대상이 분명한 사회적 인물을 다루면서 공개 당시 그 의미를 두고 유럽 사회에 여러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시신 9구에 흰 천을 씌워 눕혀 놓은 ‘모두’(2007)는 완성 이듬해 오스트리아에서 최초 공개됐는데, 이날 언론공개회에서는 최근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맥락과 맞닿아 전에 없던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작품들은 모두 보호용 펜스 없이 근접 관람할 수 있다. 관람객의 감상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요인은 지양하자는 작가의 뜻을 반영했다고 한다.
직관적인 소재와 신랄한 표현법을 주요 무기로 삼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은 의미를 가늠하기 어려운 미술전시 특유의 추상성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관객에게도 흥미로운 전시 경험을 선사한다.
김 관장은 작품에 다만 정해진 메시지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작가는 ‘절대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듣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전이 열려도) 아티스트 토크를 하지 않고, 본인 입으로 작업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정답은 없으니 관람객들이 본 대로 해석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에 가까울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국내 언론의 모습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모습이 관찰됐지만, 공식 행사 동안 직접 나서서 작품에 대해 발언하거나 인사를 나누는 등의 개입은 하지 않았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WE’는 31일부터 7월 16일까지 약 6개월 간 서울 용산 리움미술관에서 무료 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