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한국 무당 이야기 '시간을 꿈꾸는 소녀'…외국 관객 "어떻게 찍었냐" 물었다

입력 2023-01-1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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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컷 (㈜하이하버픽쳐스, ㈜영화사 진진)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컷 (㈜하이하버픽쳐스, ㈜영화사 진진)
6살 때부터 타인의 삶을 점치기 시작했다는 소녀무당, 권수진 씨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건 그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15년부터였다. 박혁지 감독은 차 한 대 드나들 길도 제대로 닦이지 않은 강원도 홍성의 산골을 부단히 오가며 ‘무당’이기 전에 수능을 준비하는 평범한 ‘소녀’의 모습을 관찰했다.

서울로 진학한 권수진 씨가 돌연 촬영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시간을 꿈꾸는 소녀’ 촬영은 한동안 멈추게 된다. 12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수진보살이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이 되면서 (촬영에서) 잘렸다”고 아찔했던 당시를 돌이켰다. 공들인 작품이 물거품 될 상황이었지만, 당사자의 뜻이 워낙 확고해 더 만류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2019년, 포기하다시피 한 촬영을 3년 만에 재개한다. 불쑥 전화를 걸어온 권수진 씨가 “다시 찍고 싶다”고 말해서다. 당시를 돌이키던 박 감독은 “다큐를 봐서 아시다시피 수진이가 좀 뻔뻔한 데가 있다”며 웃었다.

▲박혁지 감독 (㈜하이하버픽쳐스, ㈜영화사 진진)
▲박혁지 감독 (㈜하이하버픽쳐스, ㈜영화사 진진)

1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시간을 꿈꾸는 소녀’는 운명으로 정해졌다고 믿는 삶과 내가 개척해나가고 싶은 삶 사이에서 고민해온 권수진 씨의 이야기다. 3년간의 촬영 공백 때문에 그 고민이 충분히 담기지는 못했지만, 박 감독은 다시 만난 권수진 씨에게서도 여전히 어떤 종류의 ‘머뭇거림’은 포착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인간이라는 게 선택을 했다고 해서 깔끔하게 마음을 정리하기 쉽지 않잖아요. 가끔 뒤돌아보기도 하고, 저쪽 길을 갈 걸 하며 후회하기도 하고… 작품에서 그런 모습이 비치죠.”

작품 속 권수진 씨는 자신을 찾아온 상담자가 털어놓는 부부 갈등, 사업 고민에 인생사를 통달한 사람처럼 능수능란하게 답변해주지만, 정작 강릉이 고향이라는 대학 친구에게는 ‘강릉도 바다야?’라고 물을 정도로 일상적인 경험이 넉넉지 않은 모습이다.

박 감독은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치부를 너무 많이 듣고 자라서 사회의 안 좋은 부분은 많이 알고 있지만,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소소한 일상은 없이 컸다는 생각에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촬영 과정을 돌이켰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컷 (㈜하이하버픽쳐스, ㈜영화사 진진)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컷 (㈜하이하버픽쳐스, ㈜영화사 진진)

‘시간을 꿈꾸는 소녀’는 지난해 11월 열린 제35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받았다. 다큐멘터리계의 최고 권위 행사로 손꼽히는 곳이다.

GV에서 만난 외국 관객들은 "어떻게 촬영했는지”를 가장 궁금해했다고 한다. 마치 촬영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대상에 밀착해 자연스러운 장면을 얻어내는 박 감독의 스타일에 대한 호기심이다. 박 감독은 “홍성에 한 번 촬영을 가면 3박4일은 있었다. 언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늘 스탠바이 상태였다”고 했다. 89회차의 끈질긴 촬영 끝에 내놓은 결과물이다.

▲박혁지 감독이 지난해 11월 열린 제35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받아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하이하버픽쳐스, ㈜영화사 진진)
▲박혁지 감독이 지난해 11월 열린 제35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받아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하이하버픽쳐스, ㈜영화사 진진)

촬영 면에서는 아쉬운 부분도 있다고 했다. "신을 거부할 때 온다는 ‘신병’이라는 걸 찍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병원에 가도 원인을 모르고 백약이 무효라는데 그런 모습이 있으면 좀 더 드라마틱해지지 않을까 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다만 그런 장면을 포착해 내보였다면 오히려 삶과 선택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의 보편적인 주제 의식이 ‘무속신앙을 증명하는’ 방향으로 좁혀졌을지도 모른다는 평가에 고개를 끄덕였다.

박 감독은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관객들은 한 소녀가 성장 과정에서 겪는 질곡에 집중해준 것 같다. 한 관객은 무당이 아닌 나도 늘 선택하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그런 면에서 봐주면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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