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극적인 삶은 예술가들의 창작 욕구를 자극한다. 드라마틱한 서사와 영웅적 행보는 충분히 그럴 만하다. 소설로는 이문열이 ‘불멸’을 통해 안중근의 거사 과정을 소상히 보여준 바 있고, 최근에는 김훈도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아 더 미룰 수 없다며 써 내려간 ‘하얼빈’이 베스트셀러 소설 분야 1위에 올랐었다.
그런데 영상 콘텐츠 쪽은 시원치 않다. 오래전에 서세원 감독이 사재를 털어 만든 ‘도마 안중근’은 역대 망작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뮤지컬 제작자인 윤호진이 ‘영웅’을 들고 나왔다. ‘명성황후’로 자리를 잡은 제작자의 야심작이었다. 이미 개그맨으로 자리를 잡은(뮤지컬 배우 겸업) 정성화를 타이틀 롤로 쓰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는 중론이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윤제균 감독은 상업적 코드와 대중적 정서를 기가 막히게 캐치하는 영리한 감독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이산가족 찾기 장면은 별 연출 없이도 관객들의 눈물 콧물을 쏙 빼놓았다.
그가 뮤지컬 ‘영웅’을 스크린에 올렸다. 코로나로 근 2년 동안 창고에 묵혀 있다가 이제서야 개봉하게 된 거다. 관객 스코어도 벌써 200만 명을 넘어섰다 하니 손익분기점은 쉽게 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영웅’은 역사적 팩트에 대체적으로 충실했다. 독립운동가의 중압감을 덜어내고 안중근의 인간적 고뇌와 가족들의 아픔을 밀도 있게 표현했다. 당시 동북아 정세와 일본의 정계 사정도 영화 속에 잘 녹여냈다. 사실 이토는 한일 병합을 서둘지 않았다. 차츰 정세가 무르익기를 기다리자는 입장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피살로 합방은 서둘러진다.
도마(세례명) 안중근은 종교적 번민으로 힘들어한다. 대한제국의 군인 신분이며 전쟁을 수행하는 전사 입장에선 당연히 이토는 처단해야 할 적이지만 가톨릭 교리와 배치되는 ‘살인’을 놓고 그의 정신적 지주였던 빌렘 신부와 갈등을 겪는다.
조마리아 여사의 용기, 짧은 수형생활 중에 우정을 나눈 일본 간수와의 에피소드, 전투 중에 생포한 일본 병사들을 ‘만국공법’에 의해 풀어줬다가 크게 낭패를 본 일들은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젊은 나이에 ‘동양평화론’이라는 신념을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불과 그의 나이 만 서른이었다.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