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중국인(중국어로 ‘老百姓’이라 불리는) 군중은 중국의 억압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그리고 암묵적으로 전반적인 억압에 대한 불만을 표명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많은 사람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없다는 의미로 백지를 들었다.
시진핑 역시 그 백지들을 봤다. 경찰은 많은 시위자를 구금하고 사람들이 몰릴 수 있는 곳들을 차단했지만, 중국 정부는 여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당국은 “새로운 상황”을 선언했고 수요일(7일) 코로나19 정책을 완화했다.
중국 지도부는 이 모든 판단을 시위를 크게 의식하지 않은 채 자체적으로 내린 것처럼 가장했다. 그러면서 전염병과 중국인을 억제해온 코로나19 정책의 부담스러운 요소 상당 부분을 중단하기로 선언한 것이다.
봉쇄는 더 짧아지고 표적화할 것이며 가벼운 증상으로 양성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격리되는 대신 집에 머물 수 있게 됐다. 대부분 공공장소에선 더는 음성 검사지가 일상적으로 요구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코로나19 증상을 숨기지 못하게 하려고 판매를 축소했던 감기약도 다시 살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응은 독재정치의 종말이라는 더 큰 열망을 역시나 해결해주지 않았다.
독재정권은 여전히 남아있으며 거리 시위로 인해 구금된 사람들은 아마도 계속 감옥에 있을 것이다. 그래도 수요일 발표는 놀라운 반전이다.
역사적으로 현대의 중국에서 대중 시위는 더 많은 자유 대신 더 적은 자유를 가져왔다. 1956년 마오쩌둥은 “100송이 꽃이 피어나게 하라(백화제방·백가쟁명 운동)”고 했지만, 이후 꽃을 피운 지식인 중 일부가 그의 정책을 비판했을 때 이 운동은 섬뜩해졌다. 결말은 탄압이었고, 몇몇 중국인 친구들은 20년간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1976년 4월 강경파에 대한 대중 시위는 개혁가 중 한 명이던 덩샤오핑을 주저앉혔다. 1978년과 1979년 더 커진 자유를 요구하는 “민주의 벽”에 대한 목소리는 웨이장성과 같은 운동가들의 투옥으로 이어졌다. 1986년 자유화를 요구하는 학생 시위는 자유화를 용인했던 공산당 지도자 후야오방 총서기를 물러나게 했다.
그 후 1989년 있었던 톈안먼 민주화 운동은 더 큰 자유를 향한 심오한 외침이었고, 그 결과 대학살과 장기 징역형, 그리고 국가를 덜 자유롭게 하려는 강경파의 부상이 따랐다.
이런 이유로 시진핑이 시위대에 고개 숙인 것은 역사적인 사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완화책엔 대가가 따를지 모른다.
시진핑은 한동안 코로나19 사망률을 거의 모든 나라가 부러워할 수준까지 낮추면서 바이러스를 능숙하게 관리했다. 하지만 백신이 보급되기 시작하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서방이 만든 효과적인 mRNA 백신을 수입하지 않았고 취약계층과 노인을 위한 접종과 백신을 충분히 홍보하지 않았다. 그는 백신이 지속 가능한 이후에도 봉쇄 정책을 오랜 기간 유지했는데, 부분적으로 이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투옥해 여론 수렴에 어려움을 겪는 전형적인 독재자의 모습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코로나19 규제가 아무리 빠르게 완화해도 고령층의 백신 접종률 상승이 선행되지 않으면 중국인 수십만 명은 코로나19로 사망할 수 있다. 그건 시진핑에게 달렸다.
중국의 큰 역설 중 하나는 많은 분야에서 놀라울 만큼 행정적으로 자기 교정에 능하다는 점이다. 중국은 놀라운 인프라 개발과 교육 향상을 관장해왔고, 오늘날 베이징에서 태어난 아이는 워싱턴D.C.에서 태어난 아이보다 기대수명이 높다. 그러나 중국 지도자들은 종종 이념적인 영역에서 자기 교정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 결과 중국의 독재자들은 더 많은 참여를 열망하는 도시의 고학력 중산층 부상을 감시했고, 아직 “인민의 중국”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있다.
개혁기에 중국은 분명 소득 향상을 통해 많은 시민을 매수했다. 이 암묵적인 거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향상하게 하되, 그 삶을 완전히 결정하진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시진핑은 그의 코로나19 정책으로 이 거래를 깨뜨렸고, 사람들의 삶을 더 악화시켰다.
수년 전 본인이 뉴욕타임스 베이징 특파원으로 톈안먼 시위를 취재했을 때 한 청년은 국가적 열망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린 쌀을 갖고 있지만, 권리를 원한다.”
최근 시위에서 구호는 이와 비슷했다. “우린 봉쇄가 아닌 자유를 원한다. 우린 통치자가 아닌 투표를 원한다. 우린 거짓말이 아닌 존엄성을 원한다. 우린 시민이지 노예가 아니다.”
이 용감한 시위자들은 중국의 국가 정책을 바꿨고, 광범위한 권리에 대한 이들의 열망은 더는 바이러스보다도 사라지기 어려운 것이 됐다. 언젠가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이러한 지극히 인간적인 열망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시진핑이 계속 집권할지 모르지만, 올해 시위의 유산은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에서 이 같은 열망이 수면 바로 아래서 여전히 깜박거리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줄 것이다.
12월 7일자 Xi Loosens Up. It Won’t Be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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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뉴욕타임스(NYT) 니컬러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의 칼럼 번역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