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COP27에서 가장 큰 성과로 꼽힌 것은 ‘손실과 피해’ 기금 조성이다. 선진국이 처음으로 기후변화에 개발도상국들이 당한 ‘손실과 피해’에 대응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여전히 선진국들은 기후변화를 초래한 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꺼려 결정문에 ‘보상’이나 ‘책임’과 같은 문구를 꺼렸지만, 어쨌든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연대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의의는 있다.
하지만 기금을 어떻게 조성할지, 어떻게 쓸 것인지 등 세부 사항은 전혀 나오지 않고 그냥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는 말만 나온 것이 전 세계인의 관심을 모았던 올해 COP27의 가장 큰 성과라니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COP가 1995년 5월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개최되고 나서 무려 27년이 흘렀는데 아직도 ‘말잔치’에 끝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정말 별로 없는데 언제까지 아무런 행동도 따르지 않는 ‘말의 향연’만 벌일 것인가.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소속 과학자들은 늦어도 2025년까지는 전 세계 탄소 배출이 정점에 도달해야 생존 가능한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에게 불과 3년이라는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지구 온난화의 파멸적 미래를 피하려면 산업혁명 이전 기준으로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 이상적으로는 1.5℃ 이하로 제한해야 하는데 온도는 이미 1.1℃ 이상 상승했다. 임계점을 돌파하면 그 이후로는 인류가 아무리 노력해도 기후변화를 되돌릴 수 없다고 과학자들은 입을 모아 경고한다.
여기에 IPCC의 분석은 지난해 가을까지의 데이터가 기준이어서 올해 초 일어난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을 반영하지 않았다. 루슬란 스트레레츠 우크라이나 환경보호부 장관은 COP27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3300만 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됐다”고 주장했다. BBC방송은 “이는 2년간 영국 도로에 약 1600만 대 자동차를 추가하는 것과 같다”고 장관의 발언을 분석했다.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포격으로 발생한 산불과 화재를 감안하면 막대한 온실가스가 배출됐음은 확실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난에 직면한 유럽이 석탄 등 화석연료 사용을 다시 늘리는 것도 확실히 기후 관점에서는 재앙과 같다. 즉,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인류는 오히려 기후변화의 파멸적 결과를 앞당기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세계 각국이 ‘자국 이기주의’에 함몰돼 일치된 대응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책임 전가만 하면서 구체적인 행동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야말로 자국 이기주의 ‘끝판왕’ 사례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아직 미국에서 제대로 생산되지도 않는 배터리 원료를 쓰는 기업에만 보조금을 지원하겠다니 이 얼마나 ‘언어도단’인가. 유럽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유럽연합(EU) 지도자들과 외교관들은 COP27에서 다른 나라가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이라며 한탄했다. 정작 독일과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은 아프리카에서 화석연료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현지 친환경 정책이나 인프라에 대한 지원은 인색해 ‘녹색 식민주의’라는 비판을 사고 있다. 신흥국과 개도국들도 선진국 탓만 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개도국들은 COP27에서 선진국을 향해 2009년 합의했던 연간 1000억 달러(약 133조 원)의 기후변화 재원 제공 약속을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반대로 이런 자금을 부담해야 하는 선진국 유권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개도국들이 지금까지 지원받은 자금을 제대로 썼는지도 공개해야 하지 않을까. 약속 이행이 되지 않는 것은 그만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내년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릴 COP28에서는 올해와 같은 좌절과 실망 대신 기후변화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기를 고대한다. baejh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