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금리 행진은 그러나 여기서 그칠 것 같지 않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다음달에도, 내년에도 더 올릴 수 있다고 예고했다. 속도 조절론에 대해서도 시기상조라고 못박았다.
여기에 유로존과 영국이 동참했다. 유럽중앙은행은 지난달 27일 대폭 인상을 단행했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 약속이나 한 듯 미국과 영국이 보조를 맞췄다. 영국은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 수준. 인상폭도 0.75%포인트로 동일하다. 마치 고금리 국제 카르텔이라도 결성된 듯하다. 바야흐로 세계가 초고금리 시대를 맞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일사불란하게 고금리 정책을 밀고나가는 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때문. 하지만 지금까지는 미국, 유럽 모두 완패했다. 미국은 9월 소비자물가가 8.2%로, 정점을 찍은 지난 6월의 9.1%에서 크게 누그러들지 않았다. 지난달 유로존 19개국 물가상승률은 10.7%로 전달보다 더 올라 1997년 이후 최악이다. 독일은 1951년 이후 최고 수준. 발트해 3국 평균 물가상승률은 20%나 된다. 가위 살인적이다.
인플레이션 사냥에 전가의 보도처럼 쓰고 있는 금리인상의 마지노선은 어디까지일까. 금리인상은 소금이나 독과 같아서 지나치게 쓰면 경기침체를 불러오는 양날의 칼임을 정책당국자들이 모를 리 없다. 고금리가 금융비용을 높여 수요를 감소시키고, 성장을 저해함으로써 침체국면에 빠지면, 소뿔을 자르려다 소를 잡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량실업 사태를 초래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코로나로 인해 중증에 걸려 있는 세계경제를 발로 차 벼랑 끝으로 밀어버린 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가격 상승이 제조업뿐 아니라 소비재와 서비스 가격 폭등을 불러왔다.
경기침체라는 폭풍을 눈앞에 둔 소비자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3분기에 이미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고, 내년 초에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도 마찬가지. 블룸버그 통신이 42명의 경제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0%가 내년 경기침체가 올 것이고, 10월쯤 되면 100%가 침체국면에 빠질 것이라고 대답했다. 게다가 연방은행은 내년 기준금리가 4.5~4.75%, 골드만삭스는 내년 3월까지 4.75~5.0%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경기침체라는 허리케인은 피할 수 없다는 예보다. 실업과 물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파월의 단언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있다. 노동시장은 아직 건실하다는 파월의 진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기업들이 잇따라 감원을 단행하거나 예고하고 나선 것이다. 미 최대 소매체인 월마트는 최근 14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밝혔다. 다가올 경기침체에 대비한 이른바 ‘선제방어책’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미디어 공룡 CNN도 시청률 감소와 수익 감소를 이유로 감원이 불가피하다고 직원들에게 통보했다. 의류회사 갭은 5%, 가구제조업체 웨이페어도 10%에 해당하는 870명을 감원할 예정이다. 부동산기업 리멕스는17% 대량 감원한다.
고임금, 고성장을 주도해온 테크기업들도 침체 회오리를 비껴가기는 어려운 처지다. 트위터를 인수한 일론 머스크는 인수 즉시 직원 절반을 해고했고 넷플릭스, 테슬라도 감원을 단행했거나 예고한 상태다.
정작 뾰족한 대비책이 없는 건 소비자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건 주택 구입자들이다. 수개월 사이에 모기지 금리(30년 고정)가 연 7%대를 넘어서자, 집을 사는 걸 포기하고 부모 집으로 합치는 사례마저 늘고 있다.
아마존은 연말 쇼핑시즌을 앞당겨 일찌감치 10월부터 시작했다. “하루라도 일찍 쇼핑을 하는 게 돈 버는 것”이라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디어들은 소비자들에게 높은 이자가 적용될 모기지 불입금, 크레딧카드 대금, 자동차구입 상환금, 기타 신용융자 등 단기변동 이자율 적용 금융상품을 줄이거나 고정금리로 바꿀 것을 권장하고 있다. 당장 난방비 가격부터 알아볼 것도 주문했다.
연말 할러데이 쇼핑시즌을 앞두고 ‘1000달러 쇼핑기금 마련을 위한 전략’ 같은 알뜰쇼핑 요령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중고 판매 사이트에 올려 팔고, 파트타임 일을 잡고, 음식 배달, 집이나 자동차 렌트 주기 등을 통해서 한 푼이라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 허리띠 졸라매기 외에 다른 방도가 없는 서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맞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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