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찬의 세금과 사회] 인플레이션 압박과 조세재정정책이 할 일

입력 2022-10-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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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재정포럼 회장, 홍익대 교수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9월 전년 동월 대비 8.2% 상승했다. 독일은 정확하게 10%로 올라섰다. 한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5.6% 상승했다. 우리가 좀 나은 편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의 물가지수가 주거비용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 서민들이 실제로 느끼는 물가압박은 지수가 가리키는 것보다 훨씬 더할 것이다. 환율 악화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효과가 반영돼가면 앞으로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입장선회 전망은 요원하다.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 경기침체를 각오하고 있다. 원화는 주요국 통화가치 변화율과 비교할 때 9월 이후 달러 대비 거의 제일 큰 낙폭을 보여주었다. 파운드화가 5.6% 떨어질 때 원화는 6.8%나 하락했다. 한은의 금리상승 기조도 최소한 연말까지는 이어질 것이다.

경기침체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그렇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제일 고통받은 이들도 역시 없는 서민들이다. 세계의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영하는 이유는 경기침체 우려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초기에 방치하는 경우 기대인플레이션이 경제주체들의 의식 속에 자리잡아 경제침체와 서민의 어려움을 더 오래 지속하게 만들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긴축적 통화정책을 피하기 어렵다면 재정정책은 어떤 역할을 해주어야 할까? 거시경제적 책임을 통화정책과 같이 나누면서도 인플레이션과 우리 경제가 처한 중층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재정정책은 어떤 기조를 지향해야 하는가?

현재의 인플레이션 추세는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식품과 에너지 비용 등 분야에서 가격상승은 소비자물가지수를 훨씬 웃돈다. 특히 엥겔지수가 높은 서민들이 2년에 걸쳐 피부로 느낄 물가압박은 30%를 넘을 것이다. 소득이 고정돼 있는 이들에게 이만큼의 실질소득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기초연금이나 실업급여, 기초생계비를 통해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로 사는 이들, 낮은 수준의 국민연금 수급자들 등 이 사회의 다수에게 헤쳐나가기 어려운 난관으로 닥치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한 소비위축은 소규모 사업자에게도 재앙으로 닥치게 될 것이다. 정부의 재정이 다른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할 일은 이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이다. 정부의 의무지출 성격의 급여를 실질소득이 줄지 않도록 현실화해주어야 한다. 낮은 소득수준의 연금급여도 현실화가 필요하다. 이런 어려움을 덮어두고 재정지출을 억제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재정의 지속성 관점에서도 좋지 않다.

영국에서 신임 트러스 총리가 재정지출은 증가시키면서 감세를 발표하자 금융시장의 반응이 격렬했다. 파운드화 가치 급락에 영란은행이 긴급 개입해 국채를 매입해주었다. 시장 반응은 여전히 불안했고 트러스 총리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법인세율 25%로의 인상을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영국과 다른가? 추경호 장관은 기재부 국감에서 그렇다고 답변했다. 우리는 재정지출의 축소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재정지출을 늘리고 있는 영국과는 다르며 금융시장이 재정건전성을 추구하는 한국을 좋게 볼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추경호 장관은 현실에 무지한 사람이다. 좋게 보더라도 재정정책의 운영에 미숙한 사람이다. 최소한 영국 정부는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서민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지 않으면 이 국면을 넘어가기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재정지속성은 그 다음 차원의 문제인데 트러스는 감세정책을 내세워 이 단계에서 금융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추경호 장관은 금융시장의 신뢰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많은 이들을 고통 속에 버려둠으로써 그들의 인적자원을 훼손시키고 내수를 위축시키며 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재정정책의 기조는 필요한 수준의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것이다. 우선 먼저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생존위기에 몰린 소득하위계층의 국민들을 지원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과 디지털 사회의 기반 마련 등 미래를 위한 정부의 선제적 투자가 필요하고 고령화 및 저출산 대비 중복지, 중부담 수준의 복지사회를 구현해야 한다. 재정확대 요인별로 적절한 재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회안정을 위한 지출 재원은 세수입 확대를 통하여, 그리고 미래 사회를 위한 정부의 선제적 인프라 투자는 혜택이 미래세대에 더 크게 작용하므로 정부부채를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의 경제상황은 감세를 허용하지 않는다. 높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소득지원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서민들의 삶은 무너진다. 국가부채를 크게 늘리지 않는다면 경제상황에 부응하는 재정지출 유지와 감세정책은 양립하기 어렵다. 통화정책에서 긴축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재정정책도 이에 부응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국가부채를 크게 늘리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피하려면 감세정책은 불가능하다. 경제상황에 부응하여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정지출이 늘어나면 그만큼 증세를 통하여 재원을 확보함으로써 재정이 통화정책의 긴축적 노력을 무력화시키지는 않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소득최상위계층에게 유리한 감세를 제안하고 있는 매우 유니크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법인세율 인하는 주식의 대부분을 소유하는 상위 1% 계층에게, 종합부동산에 대한 감세는 고가주택 소유자들에게, 그리고 상속증여세 인하는 역시 자산상위계층에게 혜택으로 작용할 뿐이다. 이들의 계좌에 소비로도 투자로도 사용되지 않고 고여있는 여분의 자금을 더 늘려주는 것이 경제에 어떤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설명은 매우 부족하다. 이들은 감세가 아니라 증세의 대상이다.

금융위기 이후, 그리고 코로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서 금융완화 정책으로 증가된 유동성이 글로벌하게 부동산 및 금융자산의 가치를 상승시켰고 자산과 소득의 양극화 또한 크게 벌어졌다. 경제적 능력의 평가기준으로 자산이라는 척도는 소득 못지않게 중요성이 커졌다. 이러한 측면에서 자산 및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는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요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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