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 합의는 강달러의 산물이었다. 인플레 파이터 폴 볼커 미 연준 의장의 금리 인상으로 시작된 달러 강세가 1985년 정점을 향하고 있었다. 엔달러 환율은 260엔까지 치솟았다. 엔저 호황에 일본의 무역흑자는 쌓여갔다. 거꾸로 미국은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무역적자 중 37.2%가 일본이었고 독일이 9.1%였다. 결국 미국은 일본과 독일에 통화절상 압력을 넣었다. 그렇게 열린 게 플라자 미팅이었다.
“즉각적인 시장개입이 없었는데도 달러가 급격히 하락했다. 당국의 의도가 명확하게 전달된 것이다. 달러는 엔화에 대해 12% 떨어졌다. 추가 개입 없이도 달러는 계속해서 약해졌다.” 폴 볼커 당시 미 연준 의장은 교텐 토요오와의 공저 ‘달러의 부활(changing fortunes)’에 이렇게 썼다.
엔달러 환율은 1년 뒤 120엔까지 떨어졌다. 엔고로 수출기업은 비명을 질렀다. 엔고불황에 일본 경제는 흔들렸다. 경기 침체를 우려한 일본 중앙은행은 계속 금리를 내렸다. 시장엔 유동성이 넘쳐났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은 과열됐다. 닛케이지수가 세 배 이상 급등했고 집값도 천정부지였다. 미국 콜롬비아 영화사와 록펠러센터를 사들인 것도 이때였다.
거품은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일본 중앙은행은 금리인상 카드를 꺼냈다. 1989년 말 2.5%였던 기준금리가 3개월 새 5.25%까지 뛰었다. 결국 거품이 터졌다. 닛케이지수는 2년 반 만에 3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부동산 가격도 50% 이상 폭락했다. 소비 위축으로 경제성장률은 바닥을 헤맸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다.
플라자 합의 10년 뒤 강달러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1995년 엔달러 환율 80엔이 무너지자 G7이 글로벌 경제 안정을 위해 인위적 엔저 유도를 결정한다. 이른바 역플라자 합의다. 이로 인해 부활한 강달러는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위기의 단초가 됐다.
강달러는 어김없이 위기를 부른다. 제롬 파월 미 연준의장이 연설한 8월 26일 잭슨홀 미팅이 플라자합의와 역플라자합의를 소환한 이유다. 강력한 긴축 의지를 표명한 8분 연설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흔들었다. 1331.30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3주 새 장중 1399원까지 치솟았다. 연초 대비로는 200원 이상 뛴 것이다. 금융 당국의 환율 방어는 한계가 있다.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0.75% 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된 터라 1400원 돌파는 시간문제다.
성격이 상반된 두 번의 위기와 상황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인플레 고통 속에 금융시장 충격과 집값 하락, 경기 침체, 성장률 저하 등은 닮은꼴이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은 일본의 거품 붕괴를 연상케 한다. 지난해 6월 3300선까지 갔던 코스피는 최근 2300선까지 밀렸다.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 경고음도 울린다. 믿었던 수출마저 흔들리고 있다. 8월까지 누적 무역적자가 247억 달러에 달한다. 엔화 약세가 가속화하는 데다 중국의 경기 둔화까지 겹쳐 수출 전망도 어둡다. 경상수지 적자도 현실화해 쌍둥이 적자까지 우려된다. 성장률 하락세도 가파르다. 수출 의존도가 높고 시장 개방성이 큰 우리나라는 충격파가 더 크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에 이미 진입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비상한 상황이다. 금융시장의 불안을 해소하는 게 발등의 불이다. 당장 이번 주 한미 금리가 역전된다. 외화자금 유출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외환보유액도 줄고 있다. 안전판이 필요하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가 절실한 이유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이 금명간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난다. 5월 정상회담서 합의한 외환시장의 긴밀한 협력이 립서비스가 아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경제 전반의 활력 저하를 막기 위해 기업들의 숨통을 터줘야 한다. 당장 법인세 인하와 기업 투자세액 공제 확대 등을 통해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고용과 근로시간 유연성 등 노동개혁도 필수다. 기업의 구조개혁도 늦출 수 없다. 부동산 시장 경착륙도 막아야 한다. 서민 대책도 시급하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대통령과 여야 모두가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이다. 지금 영빈관 건립이나 ‘노란봉투법’, 기초연금 인상법 같은 포퓰리즘 입법으로 국력을 낭비할 한가한 상황인가. lee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