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반값 등록금’이 화두였다. 당시 청년층의 학자금 부담은 꿈을 추구하기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심리를 키웠고, ‘88만 원 세대’라는 자조적 표현을 낳았다.
‘천조국’으로 불리는 미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 학자금 대출은 주택담보대출을 제외한 가계 부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미국 전역 4500만 명이 연방 학자금 대출로 진 빚은 1조6000억 달러(약 2212조 원), 1인당 평균 약 3만6000만 달러에 달한다. 최근에 금리와 물가가 오르는데 소득은 정체되면서 청년층의 학자금 대출 부담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대출자의 약 16%는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다.
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말 자신의 대선 공약이었던 학자금 대출 탕감책을 발표했다. 1인당 최대 2만 달러, 총 3640억 달러를 탕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역대 최대 규모다. 미국 당국은 이번 탕감책으로 4300만 명이 혜택을 보고, 그중 2000만 명은 학자금 대출 상환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책 의도는 좋지만 논란은 거세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지원책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표심을 의식한 돈 풀기라는 지적에서부터 이미 허리띠를 졸라매고 대출을 다 갚은 이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거론된다.
특히 시장에서는 학자금 탕감이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며 거세게 비판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책으로 푼 돈이 인플레이션을 악화시켰듯이 이번 정책이 그러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출금 탕감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나 다른 차입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이러한 비판론은 편협한 자본주의의 단면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2008년 금융기관의 모럴 해저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는 일단 기업들의 줄도산을 막고 보자는 식으로 막대한 재정을 풀어 기업 살리기에 몰두했다. 기업의 부도를 막아야 실업률 급등을 저지할 수 있다는 명분이었다.
도산에 내몰리는 기업에 대한 재정 투입은 ‘대의’이고, 학자금을 받는 것은 과실이 아닌 필수인 상황에서 빚에 허덕이는 청년들의 대출 탕감은 부작용만 큰 비효율적인 투자일까.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계층 간 이동 통로가 적어질수록 그 사회는 불안정하다고 말했다. 이들의 계층 이동을 위한 지원책에 인플레이션 원인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기보다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 개념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better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