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한산’, ‘비상선언’, ‘헌트’가 한 주 차이로 빈틈없는 개봉 일정을 소화한 가운데, 200~300억 대의 제작비를 투입한 여름 대작 성적이 전반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에서는 지나친 감독 중심주의, 스타 캐스팅에 대한 기대 하락, OTT와의 만족도 비교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학후 영화평론가는 “영화가 안 된다고 관객을 탓하는 건 지극히 잘못된 판단이다. 관성적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관객이 불신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16일까지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여름 대작 중 그나마 안도의 숨을 내쉰 건 ‘한산’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으로 7월 27일 개봉해 개봉 3일 차에 100만 관객을 넘겼고, 상영 20일 차인 지난 광복절에 6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누적 관객 수 624만 명, 매출액은 639억 원이다.
다만 1761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최고 기록을 쓴 ‘명량’의 김한민 감독이 내놓은 후속작이 1000만 관객의 문턱에도 가지 못하는 현실이 한국 영화계의 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냉정한 평가도 나온다.
‘외계+인’과 ‘비상선언’의 연이은 부진도 영화계의 부정적인 기류를 뒷받침하는 모양새다.
7월 20일 개봉으로 여름 대작 경쟁의 선봉장에 선 ‘외계+인’은 매출액 159억 원, 누적 관객 수 152만 명으로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냈다. 개봉 한 달을 넘어서며 모객 속도가 더뎌진 만큼 200만 명 달성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외계+인’은 1부와 2부를 13개월 동안 연이어 촬영하면서 제작비만 400억 원 넘게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급사인 CJ ENM과 제작사 케이퍼필름의 손해 만회 전략이 절실한 만큼 이미 촬영해 놓은 2부의 개봉 시점과 개봉 방식을 선택하는 일이 숙제로 남았다.
8월 3일 개봉한 ‘비상선언’도 아쉬움만 남긴 건 마찬가지다. 제작보고회 당시 주연배우 전도연은 “당연히 1000만 갈 영화”라고 자신감을 보였지만 관객 수는 지금까지 197만 명이다. 제작비는 300억 원 선으로 알려졌지만 매출액은 198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화 외적인 논란까지 불거졌다. ‘비상선언’에 대한 비방 섞인 댓글 여론을 조작하는 소위 ’역바이럴’ 전담 업체가 있다는 주장이 영화계 일각에서 제기되면서 배급사 쇼박스는 “관련 제보 받고 정보 수집 중”이라고 밝힌 상황이다.
가장 늦은 8월 10일 개봉한 ‘헌트'는 1주일 만에 209만 관객을 모으며 217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 중이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의 배급작으로 네 편의 경쟁작 중 2위에 오르면서 비교적 무난한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230억 원 수준의 제작비가 투입된 만큼 손익분기점인 420만 명을 넘어서려면 부지런히 관객을 불러들여야 한다.
이학후 영화평론가는 “’헌트’의 경우 우리나라 영화배우의 세대교체가 정말 안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정재를 두고 한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표현이 나오는 걸 보면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3명(김한민, 최동훈, 한재림)이 영화를 처음 연출하는 이정재 감독보다 영화를 못 찍었다는 것”이라면서 “이건 한국 영화의 퇴보”라고 비판했다.
OTT의 등장으로 오직 영화에서만 볼 수 있던 스타급 배우들의 호연을 안방극장에서도 편하게 만나볼 수 있게 된 점, 영화표 가격이 오르면서 영화 한 편을 보는 데 드는 비용이 OTT 한 달 구독료만큼 치솟은 점 등 콘텐츠 시장 변화에 따른 관객의 새로운 잣대를 영화계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평론가는 “관객은 예전 기준으로 영화를 고르지 않는다”면서 가을 개봉을 앞두고 있는 ‘정직한 후보2’와 ‘공조2: 인터내셔널’까지 흥행에 실패할 경우 “영화계에 장기 불황이 찾아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