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가 규제 철폐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규제 심사기구를 만들고 규제를 남발하지 않도록 각종 조치를 했다. 규제 철폐를 위한 연구나 토론, 회의도 수도 없이 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결정을 미루거나 책임을 회피한 예도 많았다. 정치인이 주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다. 덩어리 규제가 많아 관련 부처가 여럿이고, 부처 간 장벽이 높아 협조가 잘 안 된다. “38선은 철폐돼도 부처 간 장벽은 철폐되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규제 현실이다. 최근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나오는 사찰입장료 문제도 규제로 인해 부처 간 협조가 잘 안 된 경우이다. 환경부, 문화재청, 전라남도,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8개 기관이 협업해 겨우 해결됐다.
농촌현장의 고질적인 민원이 축산 분뇨와 냄새다. 가축 분뇨를 고체 연료화해 처리하는 혁신적 방식이 제시됐으나 규제 때문에 진전이 느리다. 환경과 생태를 살리고, 가축질병을 방지하며, 신재생 에너지 사용을 촉진하는 시대 흐름에도 부응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의욕적으로 추진코자 하나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지방자치단체. 에너지 관련 부서 등 관련 부서가 많다. 부처 간 견해가 다르고, 같은 부처 내에서도 실국 간 딴소리한다. 규제 때문에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실효성 없는 업무협정(MOU)만 맺고 있다. 의욕이 떨어진 일선 현장은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 상태이다.
얼마 전 계란 농가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다. 몇 년 전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식약처에서 계란껍질(난각)에 산란일자, 농장번호 등을 찍어서 판매하라고 했다. 올해부터 농식품부에서 이력추적제를 실시하니 계란의 모든 단계별 정보를 전산 입력하는 것이다. 신선한 계란 생산을 유도하고 사고 시 신속한 회수가 가능하도록 한 취지이다. 농가 입장에서는 식약처나 농식품부나 소관은 관심이 없다. 계란에 몇 개 부처가 관리하고 도장을 찍도록 하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사룟값이 올라 죽을 지경인데 너무나 탁상행정이며, 결과적으로 물가 상승을 부추길 것이라는 농민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 식품, 안전, 보건, 위생, 소방, 건축, 교육 등 농촌 현장의 각종 규제가 국민을 힘들게 한다. 규제로 인한 현장의 애로나 불편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규제철폐에 국정 중점을 두고 몇 가지 전략과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대통령의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 인수위 시절의 전봇대 규제문제는 대통령 당선인 발언 하루 만에 뽑혀나갔다. 정부가 출범하기 전 인수위 시절의 발언이라 더욱 영향력이 컸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를 ‘손톱 밑 가시’라고 규정하고 대통령이 직접 규제 관련 회의를 8시간 넘게 주재했다. 방송으로 중계도 했으나 시기가 늦어 기대만큼 효과가 작았다. 대통령의 규제 인식과 관심은 중요하다. 관심이 적어지면 흐지부지되고 다음 정부로 미뤄진다.
둘째, 국무총리실 규제혁신 추진단 기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규제수준과 적정성에 대한 객관적 분석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규제철폐 최종 결정권을 보장하되 예측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최종 결정이 어려워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철폐되는 가칭 ‘규제 철폐 패스트 트랙(fast track) 제도를 추진하자. 소관 부처 장관주재 규제회의에 회부된 규제는 3년 내 철폐, 국무총리실 규제혁신 추진단에 회부된 규제는 2년 내 자동 철폐되게 하자.
셋째, 규제철폐에 따른 공직자 면책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규제철폐는 반드시 여러 영향을 가져온다. 공익 목적의 규제철폐에 따른 모든 법적, 행정적, 재산적 책임으로부터 면책되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규제를 적극적으로 철폐한 공직자에게 인센티브 등 각종 인사상 혜택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넷째, 규제철폐의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중장기 기준은 선진국의 국제 표준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준수하지 않고 국민 정서에 영합한 규제는 많은 시간과 비용과 국민 부담을 야기하고 언젠가 철폐된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사태를 교훈 삼자. 윤석열 정부는 규제철폐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규제만 대폭 철폐되면 지지도는 금방 상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