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시기 대체 투자처로 주목받았던 원자재펀드와 천연자원펀드에서 자금이 대거 이탈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을 중심으로 원자재 가격이 하락 추세로 접어들고, 물가 고점 통과 기대가 커지면서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회복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15일 금융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최근 한달간 설정액 10억 원 이상인 원자재펀드와 천연자원펀드에서 각각 7295억 원, 7408억 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범위를 좁히면 자금 이탈 속도는 더욱 빨랐다. 지난 일주일 동안에만 원자재펀드에서 6011억 원, 천연자원펀드에서 6008억 원어치가 유출됐다.
원자재 투자는 물가가 상승할 때 다른 자산 대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인플레이션 시기 대표적인 헤지(위험 회피) 투자처로 꼽힌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 세계 물가 불안을 부추긴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하락하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관련 펀드에서도 자금 유출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표적인 원자재 가격 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GSCI지수는 한 달 전보다 2.17% 하락해 같은 기간 S&P500지수 상승률(10.17%)을 크게 밑돌았다.
물가를 끌어내린 동인은 유가다. 지난 6월만 해도 배럴당 120달러 이상 치솟았던 국제유가는 100달러 아래로 내려가며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가격은 지난 3월 전고점 대비 최근까지 약 24% 가까이 떨어졌다.
아울러 곡물 가격도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하는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6월 154.3에서 7월 140.9로 8.6% 하락했다.
물가 고점론에 힘이 실리면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는 원자재·천연자원펀드와 달리 국내 증시와 국내주식형 펀드는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물가 안정과 함께 긴축 우려가 완화하면서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최근 한 달간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는 각각 8.56%, 8.97% 상승했고, 국내주식형 펀드도 8.54% 올랐다.
다만 천연가스와 석탄 가격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데다가, 인플레이션 압력이 누그러지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 물가 압력이 재차 커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은 “경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위험자산 가격의 하단을 높여주는 요인이지만, 에너지 가격 상승과 함께 물가 안정에 대한 시장 기대치가 되돌려지는 계기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