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여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던 미국의 물가 상승세가 꺾였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우려가 완화하면서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살아났고, 국내외 증시는 반색했다.
다만 최근의 반등이 추세적 상승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물가 안정을 확신하지 못한 연준이 긴축 경로를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경기 둔화 우려로 하반기 기업들의 실적 눈높이도 낮아지고 있어서다.
10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는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8.5% 올랐다고 밝혔다. 41여 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던 6월(9.1%)보다 상승세가 둔화했고, 시장 예상치(8.8%)도 소폭 밑돌았다.
연준의 긴축 우려로 위축됐던 투자심리가 살아나면서 간밤 뉴욕 증시는 일제히 급등했다. 나스닥지수와 S&P500지수는 하루 동안 2.89%, 2.13% 뛰면서 각각 4월 말, 5월 초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우지수도 1.63% 올랐다.
채권시장에서도 연준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자이언트 스텝(0.75% 인상) 대신 빅 스텝(0.50% 인상)을 단행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며 국채금리가 하락했다. 금리 변동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를 보여주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Fed Watch)에 따르면 0.75%포인트 인상 확률은 전날 68%에서 43.5%로 급격히 감소했다. 빅 스텝 가능성은 32%에서 56.5%로 올랐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한 축인 중국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지난해 10월 이후 꾸준히 내림세를 보이더니 지난달(4.2% 상승)에는 17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11일 국내 증시도 안정적인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73%(42.90포인트) 오른 2523.78로 장을 마감했다. 코스피는 지난달 초 연저점(2292.01)을 찍은 이후 외국인 수급에 힘입어 약 한 달 동안 10.11% 오르며 가파르게 반등 중이다.
그러나 코스피의 추세적 상승을 점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물가가 확실히 안정됐다고 보기 어려워서다.
이번에 물가를 끌어내린 건 변동성이 큰 에너지 가격이었다. 주거비, 임금 상승 등 물가를 자극하는 요소들도 여전하다. 그렇다면 물가 안정을 확신하지 못한 연준이 탄탄한 고용지표를 근거로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박성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임금 상승 압력이 여전하고 서비스를 중심으로 근원인플레이션이 살아 있는 만큼 연준은 인플레이션 고착화를 막기 위한 고강도 긴축을 이어갈 것”이라며 “9월 자이언트 스텝은 여전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고 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멈추고 경기 상황을 고려한 통화정책을 펼치려면 최소한 헤드라인 물가 상승률이 6% 아래로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반기 들어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기업들의 실적 눈높이가 낮아지는 점도 추세 전환을 가로막는 불안요인 중 하나다. 3분기 코스피 기업이익 전망치는 한 달 전보다 2.9% 하향 조정됐다.
코스피 내에서 비중이 큰 반도체 기업들도 글로벌 수요 감소와 가격 하락으로 ‘혹한기’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3분기부터 당기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로 전환돼 내년 2분기까지 역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난달까지 코스피의 급격한 밸류에이션 조정을 통해 저점을 형성했고, 향후 저밸류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기 위해서는 이익 추정치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기업 이익 하향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밸류에이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