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현재 북한의 정세이다. 이번 연설에서도 여러 차례 드러났지만, 김정은 정권은 이제 핵보유국을 공공연하게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핵무기 완성에 따른 남북 간 국방력의 비대칭성과 핵무력의 사용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4월 5일 김여정 담화에서 남측이 군사적 대결을 선택한다면 핵전투무력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6월 8일 개최된 제8기 5차 당 전원회의에서는 남북관계를 대적투쟁으로 규정했다. 6월 24일 개최된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도 전연지대 부대의 작전 임무를 보완하면서 핵전력의 사용권한에 대한 군사행동계획을 수정한 바 있다. ‘절대병기’, ‘핵보유국 턱밑에서 살아야 하는 불안감’, ‘강력한 힘에 의한 응징’ 운운 등은 핵개발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말미에 우리와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언급한 것은 마치 잠자는 사자를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로 들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핵포기의 결단을 내리고 대화의 장으로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한의 핵집착과 함께 윤석열 정부의 대북 대응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후보자 시절부터 선제타격을 언급하였고 본격 정부 출범 이후에도 강경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가능성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그 외에 획기적인 대북 유인책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실질적으로 비핵화를 하면 경제지원을 약속하는 ‘담대한 계획’도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비핵·개방·3000’ 정책을 연상시킨다. 당시 북한은 비핵·개방·3000을 두고 선(先)비핵화정책으로서, 자신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잡아먹으려는 날강도 같은 정책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과 탈북어민 강제추방과 관련된 우리 내부의 부산한 움직임, 한미 간 총력전으로 치러진다는 8월 연합훈련은 남북 간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7·27 연설과 행보는 선제적이고 다목적의 의도가 드러난다. 대남비난을 통해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 대북제재로 인한 경제난 등의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는 한편 8월 한미연합훈련을 앞두고 핵관련 실제행동의 명분도 축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앞으로 북한은 지난 상반기에 보류했던 7차 핵실험을 단행할 것이다. 그 시기는 중국의 당대회, 미국의 중간선거 등 핵실험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을 고려하게 될 것이다. 7차 핵실험을 단행할 경우 그에 따른 국제적 비난의 화살은 한미연합훈련 등 바이든 행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군사적 긴장 조성 탓으로 전가할 것이다.
한 가지 더 우려스러운 것은 남북 간의 긴장 고조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무관심이다. 최근 미중은 대만 문제를 두고 험악한 언사를 교환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출범 이후부터 줄곧 조건 없는 대화만을 이야기할 뿐 적극적인 대북 접근을 시도하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북한의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모라토리엄 해제, 탄도 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유엔 안보리 논의를 거부하는 등 노골적으로 북한 편을 들고 있다.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반도에서 교전 시 중국이 직접 개입할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남북 간의 군사적 대결로 인한 한반도의 긴장 상황이 신냉전의 대리전이 될 것이라는 항간의 우려가 현실이 될까 두렵다.
상대방에 대한 누적된 불만은 자그마한 불씨 하나로도 크게 번질 수 있다는 점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소규모 동맹 시 사이의 사소한 다툼으로부터 촉발되었고, 사라예보에서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피살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전쟁이 나야 남북 간 대결을 멈출 것인가? 북한의 무모한 핵개발과 이에 강경한 대응으로 치닫는 한반도의 긴장 상황은 어느 한쪽도 핸들을 꺾을 수 없다면 결국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는 ‘치킨게임’과 같아서 매우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