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정치계, 기업계에서는 ‘산업수요에 부응하는 인재양성’을 줄기차게 주장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산업수요는 무지개처럼 기초수요, 응용수요, 양산수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립 가공 위주의 기술인 양산수요인 줄 알았는데 막상 진행하다 보면 응용수요가 필요하게 보일 때도 있다. 이처럼 산업수요는 빨주노초파남보로 이루어진 무지개처럼 몇 가지의 기술수요의 집합체인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이나 기업계, 정치계에서는 이를 구별하지 않고 산업수요 인력양성만 부르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중소기업 인력담당자와 만나 어떠한 산업수요에 부응하는 인재를 요구하냐고 물어보면 구체적으로 답하는 담당자를 본 적이 없다. 담당자의 대다수는 성격 좋고, 태도 좋고, 인성 좋고, 말 없는 사람이면 된다는 대답을 가장 많이 한다. 이러한 대답이 나오는 이유가 있다.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산업자원부에서 발간하는 인력 실태 관련 자료를 보면 기업의 구인인력 수요가 적게는 60%에서 많게는 80% 가까이 학력과 경력 무관한 일자리인 반면에, 대졸자 수준 인력의 미충원 비율은 1% 내외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기업의 인력 수요 대부분은 대단한 기술과 능력을 요구하는 일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가 만난 우리나라 최고의 IT기업 이사는 가장 난처할 때가 정부가 고졸, 전문대 졸업자를 위한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 일자리가 무엇이 있느냐고 질문할 때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최근 윤석렬 대통령은 반도체 인력양성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교육부가 산업수요에 부응하는 경제부처가 되라고 지시하였다. 반도체 인력에 대한 수요는 존재할 수 있다. 문제는 미래의 산업수요를 예측하여 인력을 양성한다는 것이 눈을 감고 활을 쏘아 과녁에 맞추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기술이라는 것이 시간이 변함에 따라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기에 보라색 산업인력 양성 중에 파란색 산업수요가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반도체 관련 일자리 대부분은 반도체 산업 특성상 어떠한 장비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요구하는 기술수요가 달라 해당 기업의 전폭적인 산학협력 없이는 학교나 훈련기관에서 양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2018년 말 고용노동부 직업훈련에 참여한 반도체 표면 분야 직업훈련기관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훈련 사업을 자진 반납하였다. 2022년도 원광대학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학부를 폐지한다고 발표하였다.
설사 반도체 고급기술 분야에서 인력양성이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고급기술이 경제성장이나 일자리 증대로 이어질 것으로 낙관해서는 안 된다. 기술이 경제성장과 일자리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상품생산과 소비처가 존재해야 하는데 기술력이 우수하다고 늘 상품으로 생산되는 것도 아니고 생산한다고 소비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반도체 산업 또한 다른 산업처럼 필요 인력에 대해 특별한 기술수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지만 반도체 기업이 정말로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면 애플의 사내 대학, 네이버의 부스트 캠프처럼 기업 사내 대학이나 기업과 대학 간 1대 1 계약학과를 운영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안이라 말하고 싶다. 대학이 변화하는 기술수요에 적합한 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임무이다. 일찍이 프랑스 혁명 당시 계몽주의 철학자 콩도르세가 경제적 변화는 교육의 이해와 간극을 벌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보았듯이 교육이 갈 길과 산업계가 갈 길이 늘 같은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