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대학원 재학 시절 아마도 발전행정론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정치학회 회장까지 지냈던 노(老) 교수님의 말씀 중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대목이다.
지금은 이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발전행정론은 발전행정과 행정발전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됐었다. 즉, 후진적 사회의 산업화를 이끈 주역은 소수의 엘리트 집단인 행정가들이었으며, 이들이 국가를 발전시켰고 이 과정에서 행정 자체까지 발전했다는 이론이다.
이는 제3세계 국가 이론의 권위자였던 아르헨티나 정치학자 길레르모 오도넬의 관료적 권위주의 이론과 맞물리며, 우리나라의 산업화시대 리더십과 군사독재정권 대두를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큰 축이었다.
노 교수님의 말씀을 잠시 더 이어가면, 우리나라 산업화가 본격화한 1960년대 우리 사회 수준을 10대로 본다면, 1970년대는 20대, 1980년대는 30대, 1990년대는 40대라는 것이다. 즉, 40대에 접어들어 성숙해진 사회를 더 이상 소수의 엘리트가 이끌 수 없다고 본 것으로, 사실상 그간의 우리나라 국가발전 방법론에 종언을 고한 셈이다.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굵직한 인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윤 대통령이 표방한 인사 핵심 키워드는 능력주의. 그는 당선인 시절인 4월 10일 8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내정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해당 분야를 잘 맡아 이끌어줄 분인가 기준을 두고 선정·검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주요 보직을 보면 검찰과 모피아(옛 재무부의 영문 약칭인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기획재정부 관료 그룹) 출신으로 빼곡하다. 이는 군사독재 시절 군인을 대신해 검사가 그 자리를 채운 셈이며, 엘리트 행정가들의 부활이다. 또, 검찰 출신 면면을 보면 능력주의라기보단 윤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측근 인사에 가깝다. 내각 역시 서육남(서울대 출신 60대 남성)이 주류를 이룬다. 편향적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 같은 인사는 벌써부터 정부 정책이 일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조짐과 우려를 낳고 있다. 우선, 법무부를 장악한 한동훈 장관은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정부로부터 일부 빼앗긴 검찰 수사권을 되찾기 위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특히, 검찰총장 공석 사태에도 불구하고 검찰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들 스스로 강조하고 있는 법과 원칙을 무색케 하고 있다. 전 정부 인사로 분류된 검사들에 대해선 사실상 유배지인 법무연수원에 그것도 정원수까지 늘리며 보냈다.
수사권을 나눠 가지게 된 경찰에 대한 공세는 점입가경이다. 행정안전부가 31년 만에 경찰국 신설을 추진하면서 경찰 권한을 무력화하고 있는 중이다.
사상 처음 검찰 출신 수장이 앉은 금융감독원에 대한 우려도 크다. 한때 금융허브를 목표로 했었고, 선진 감독시스템 도입을 추진해왔던 금감원이다. 그 영문명 ‘Financial Supervisory Service’에 걸맞은 서비스 기능이 후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경제정책도 대기업과 부자 우선으로 급선회 중이다. 16일 기재부가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법인세, 보유세, 상속·증여세 등 전방위적인 감세정책이 주를 이룬다. 부자감세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법인세 인하는 대기업 투자를 늘려 낙수효과를 노린다는 정책이다. 이미 그 효과가 없고 대기업 배만 불렸음이 판명되면서 글로벌 경제기조에서도 사실상 폐기된 방안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앞선 노 교수의 말을 빌리면, 2020년대 우리 사회 성숙도는 70대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양극화와 남녀·세대·노사 등 사회 곳곳에서 갈등도 커지고 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이대남(20대 남성), 이대녀(20대 여성) 간 대립이 대표적이다. 윤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됐다고 벌써 화물연대 파업에 물류대란을 겪었으며, 최저임금을 놓고 줄다리기 중이다. 일부 엘리트 위주의 쌍팔년도식 발전론으로 이 많은 갈등을 잘 조율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시점이다.
kimnh21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