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서울 시내 삼겹살집을 찾은 K씨. 메뉴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삼겹살 1인분 가격이 무려 1만6000원. 터무니없이 오른 가격에 5만 원 한 장으로 삼겹살 3인분을 시키면 끝이다. 공깃밥에 술 몇 잔을 기울이다 보니 계산서에는 10만 원 넘는 가격이 찍혔다.
국내 돼지고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국내산 돼지 도축 수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지만, 거리두기 완화에 따른 외식 증가를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계 가축 사료 가격 상승과 고환율로 돼지고기를 금값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이달 삼겹살 100g당 가격은 3865원이다. 지난해 같은 달 2955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새 30.8%가 올랐다. 같은 기간 돼지고기 목살은 2772원에서 3760원으로 35.6%가 비싸졌다. 실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가격은 더 높다. 26일 현재 국내산 삼겹살 1근(600g) 가격은 2만3600원가량(이마트몰 기준)이다. 4인 식구가 돼지 삼겹살을 저녁 메뉴로 1인당 300g씩 먹는다면, 고깃값만 최소 4만7200원이 든다. 다른 식자재까지 하면 10만~15만 원은 고려해야 한다.
올해 국산 돼지 도축 수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소식과는 반대 되는 움직임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4월 돼지 도축 마릿수는 629만 마리로 평년(600만 마리)보다 4.8% 많은 수준이다. 전년(625만 마리)과 비교해도 0.6% 증가했다.
그러나 돼지 농가들은 역대 최대 공급량에 안심할 수 없다고 우려한다.
돼지의 번식 주기상 4월부터 생산량이 급감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돼지는 태어난 지 약 여섯 달 뒤(임신 기간 4개월+성장 기간 6개월) 도축된다. 그런데 날씨가 더워지는 6~9월에는 모돈(어미 돼지)의 수태율(교배 성공률)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때 수태된 자돈(새끼 돼지)의 출하 시기가 4월부터고, 이 시점부터 생산량이 급격히 줄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돼지고기 가격 상승은 우크라이나 사태, 일부 국가의 식량 수출 중단 조치 등으로 촉발된 국제 곡물 가격 상승이 사료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 결과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4월 양돈용 배합사료 평균가격은 709원/kg으로 2020년(572원/kg) 대비 23.9% 상승, 2021년(613원/kg) 대비 15.6% 상승 등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사룟값이 치솟자 생산자인 농가의 어려움은 커지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돼지 사룟값이 30% 이상 오르면서 경영난에 직면한 상황이다.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사룟값은 돼지 생산비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사료 가격 상승만으로 돼지 한 마리를 키울 때마다 지난해보다 6만 원씩 손해를 본다.
이렇다 보니 하반기부터 한돈농가들이 심각한 경영 적자로 인해 내년에는 돼지 농가 중 약 30%가 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공급 단가 인상 뿐 아니라 갑작스러운 수요의 증가도 돼지고깃값 상승의 원인이다.
거리두기 완화로 식당 영업시간 제한이 해제되면서 외식 수요가 증가했다. 한돈자조금은 “한식, 일식 등 외식업체 전반적으로 매출액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에 따라 돼지고기 소비도 큰 폭으로 늘고 있으며 육가공업체·도매시장 등에서도 돼지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돼지가격 상승에 따른 서민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25일 “농가에 대한 특별사료 구매자금 지원을 1조5000억 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기존 예산 3550억 원이 편성돼 있었으나, 곡물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자 2차 추경에서 1조1450억 원을 추가로 요청했다.
또 경기 안성시에 있는 도드람엘피씨를 직접 방문해 돼지고기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국제 곡물 가격 상승으로 인한 사료 가격 인상 등 현장의 어려움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정 장관은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일부 국가의 식량 수출 중단 조치 등으로 물가가 크게 상승했다”며 “축산 농가들은 생산비 중 가장 비중이 큰 사료비가 올라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