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노스는 무자비한 학살에 나서며 “우주의 자원은 한정돼 있고 입은 너무 많다”라고 한탄한다.
이 시나리오의 모티브는 토마스 맬서스의 ‘인구론’에 기반을 둔다. 우리가 알고 있듯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해 결국은 그 과정(인플레이션)에서 악덕이나 빈곤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는 논리다.
1798년 출간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화학비료 개발 등 기술 발전을 무시한 그의 이론은 실패로 끝났다.
생뚱맞게 개봉한 지 4년도 넘은 어벤져스 시리즈의 타노스가 떠오른 건 최근 한국을 둘러싼 경제 위기감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건 심상치 않아 보이는 인플레이션 조짐이다. 발표되는 관련 지표가 때론 섬뜩할 정도다.
4월 국내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4.8% 올랐는데 13년 6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1년 사이 식용유 가격이 2~3배 올랐다.
소비자물가에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는 생산자물가지수는 3월에 5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4월에는 상승 폭이 둔화했지만 4개월 연속 우상향이다.
수입물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원·달러 환율은 12일 1288.6원으로, 금융위기 이후 12년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결국,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려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 긴축 상태를 만들어보겠다고 나섰는데 그 길이 거의 히말라야 오르기만큼 힘겨워 보인다.
미국 기준금리는 앞으로 빅스텝(한 번에 0.5%포인트 인상) 두 번 정도만 밟으면 연 2.25%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자 유출과 금리경쟁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현재 연 1.55%에서 미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런데 금리인상 고개를 넘어야 하는 이창용 한은 총재 눈앞에 아른거리는 두 가지가 있다. 가계부채와 국가채무다.
지난해 말 가계부채는 1862조 원으로 2013년과 비교해 약 2배로 몸집을 불렸다. 2020년 5월보다는 260조 원 증가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임계수준을 80%로 본다. 하지만 한국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06.1%에 달한다.
국가채무는 지난해 말 967조 원으로 2008년의 309조 원보다 약 3배 폭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1997년 11.4%에서 지난해 말 47.0%로 수직 상승했다.
빚을 졌으니 이자를 갚아야 하는데 금리를 올리면 대출자도 국가재정도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수밖에 없다.
경제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기업들도 자금 유통이 어려워지는 ‘돈맥경화’ 현상에 시달리게 된다. 이미 회사채 금리는 고공행진 중이고 대기업 중에는 임원 임금을 삭감한 곳이 등장했다.
관건은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까이다.
타노스처럼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려는 게 아니라면 해답은 하나다. 규제 혁파를 통해 기업이 성장하게 돕고 그 성장의 배분정책을 공정(공평이 아니다)하게 정부가 사심 없이 추진하는 것이다.
식상하겠지만, 이 식상한 해법을 제대로 펼친 정부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이것도 정 힘들다면 ‘은퇴 후 사랑받는 일본 남편’처럼 하면 된다. 집에 없으면 된다. 눈에 띄지 말라는 이야기다. 피 말리는 경쟁에서 생존 전투를 벌이는 기업들에, 한 달 급여로 대출이자 갚기도 버거운 국민들 일상에 정부가 중뿔나게 나서지 말라는 거다. vicman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