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워홈 일군 구자학 회장 별세···대한민국 산업1세대 이끈 주역

입력 2022-05-12 08:10 수정 2022-05-1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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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구자학 아워홈 회장(사진=아워홈)
▲고(故) 구자학 아워홈 회장(사진=아워홈)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유족 측이 12일 밝혔다. 향년 92세.

고(故) 구자학 아워홈 회장은 1930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고,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해 1959년 소령으로 전역했다. 1957년에는 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의 셋째 딸인 이숙희씨와 결혼했다. 당시 두 대기업 가문의 결합으로 화제를 낳았다.

이후 1960년 한일은행을 시작으로 호텔신라, 제일제당, 중앙개발, 럭키(현 LG화학), 금성사(현 LG전자), 금성일렉트론(현 SK하이닉스), LG건설(현 GS건설) 등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일선에서 뛰었다.

1980년 럭키 대표이사 재직 시절 구 회장은 기업과 나라가 잘 되려면 기술력만이 답이라고 여겼다. 80년대 당시 세계 석유화학시장 수출 강국인 일본과 대만을 따라잡기 위해 기술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구 회장은 당시 “우리는 지금 가진 게 없다. 자본도 물건을 팔 수 있는 시장도 없다. 오직 창의력과 기술, 지금 우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회장은 2000년에 LG유통(현 GS리테일) FS사업부(푸드서비스 사업부)로부터 분리 독립한 아워홈의 회장으로 취임해 20여년간 아워홈을 이끌었다. 그동안 아워홈 매출은 2125억 원(2000년)에서 2021년 1조7408억 원으로 8배 이상 성장했다. 사업 포트폴리오도 다양해졌다.

단체급식사업과 식재유통사업으로 시작한 아워홈은 현재 식품사업, 외식사업과 함께 기내식 사업, 호텔운영업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종합식품기업으로 거듭났다.

LG에서 화학, 전자, 반도체, 건설,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핵심사업의 기반을 다진 경영자가 LG유통에서 가장 작은 아워홈 사업부를 분사 독립할 때 주변에서 의아해 하던 일화는 유명하다. 역량에 비해 너무 작은 규모의 사업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런 사업부를 몸 담았던 거대 조직의 어떤 도움도 없이 2조 원에 가까운 지금의 종합식품기업 아워홈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2017년 지수원 개관식에 참석한 고 구자학 회장(사진=아워홈)
▲2017년 지수원 개관식에 참석한 고 구자학 회장(사진=아워홈)

구 회장은 음식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먹는 만큼이나 만드는 과정을 좋아했다. 미국 유학 중 현지 한인마트에 직접 김치를 담가주고 용돈벌이를 하기도 했다. LG건설 회장 재직 당시 LG유통 FS사업부에서 제공하는 단체급식에 불만이 있었다. 개선할 점이 많다고 느낀 것이다. 구 회장은 2000년 아워홈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맛과 서비스, 제조, 물류 등 모든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직접 현장을 찾아 임직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특히 그는 미래를 내다보고 대비하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구 회장은 단체급식사업도 화학, 전자와 같이 자신이 몸 담았던 첨단산업분야에 못지 않은 R&D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아워홈은 단체급식업계 최초로 2000년 식품연구원을 설립했다. 당시 임원들은 “단체급식 회사가 대량 생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연구원까지는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구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워홈 식품연구원은 설립 이래 지금까지 1만5000여 건에 달하는 레시피를 개발했으며, 현재 연구원 100여 명이 매년 약 300가지의 신규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또한 업계 최초 노로바이러스 조사기관, 축산물위생검사기관, 농산물안전성검사기관 등 공인시험기관으로서 역할도 수행하며 국내 안전 먹거리 생태계 조성에 이바지하고 있다.

생산·물류 인프라 구축에도 적극 나섰다. 2000년대 초 구 회장은 미래 식음 서비스 산업에서 생산과 물류시스템이 핵심 역량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70세 나이에도 불구하고 생산∙물류센터 부지를 찾아 전국을 돌았다. 현재 아워홈은 업계 최다 생산시설(9개)과 물류센터(14개)를 운영하며 전국 어디든 1시간 내 신선한 식품을 제공하고 있다. 콜드체인 시스템이 물류 핵심 요소로 대두되기 전에 신선물류 시스템을 누구보다 빠르게 구축했다. 2016년에는 동종 업계 최초로 자동화 식자재 분류 기능을 갖춘 동서울물류센터를 오픈, 업계 최고 수준의 물류 인프라를 자랑하고 있다.

해외진출도 빨랐다. 아워홈은 2010년 중국 단체급식사업을 시작했다. 2014년에는 청도에 식품공장을 설립했다. 다양한 중국 식재료를 원활히 수급, 직접 생산해 단체급식 질을 올리기 위해서다. 이어 2017년 베트남 하이퐁 법인 설립을 통해 베트남 시장에 진출했으며, 2018년에는 M&A를 통해 기내식 업체 HACOR를 인수하며 기내식 사업에도 진출했다. HACOR는 현재 LA국제공항에 취항하는 항공사들에 기내식을 납품하고 있으며 북미 시장 단체급식, 식품사업 확대를 위한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2021년에는 국내 업계 최초로 미국 공공기관 식음서비스 운영권을 수주했다. 미국우정청(USPS: United States Postal Service)과 구내식당 위탁 운영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어 폴란드에 법인을 설립하고 유럽 시장에 진출했으며, 올해 신규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고삐를 당기고 있다.

▲지난 2018년 직원과 이야기 중인 고 구자학 회장(사진=아워홈)
▲지난 2018년 직원과 이야기 중인 고 구자학 회장(사진=아워홈)

구 회장은 “국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먹거리로 사업을 영위하는 식품기업은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감을 동시에 짊어져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아워홈을 경영했다. 무엇보다 ‘국민 건강’을 최우선의 가치로 뒀다.

한편 구 회장은 지난 해 6월 아워홈 이사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되지 못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최근까지 회장 직함은 유지하면서도 고령으로 사실상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아내 이숙희씨와 아들 본성(아워홈 전 부회장), 딸 미현·명진·지은(아워홈 부회장)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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