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올해 러시아 루블 이어 최악 성적

입력 2022-04-0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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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5.7% 하락...11.7% 하락 루블 이어
BOJ 통화 완화정책 유지가 직접적 원인
낮은 경제성장률, ‘안전자산’ 매력 낮춰

미국 달러화와 함께 안전자산의 대명사로 꼽혔던 일본 엔화 가치가 올해 1분기 우크라이나 전쟁 직격탄을 맞은 러시아 루블에 이어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6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25개 주요국 통화의 명목 실효 환율을 추적하는 닛케이통화지수에서 엔화는 올해 1분기 5.7%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기간 11.7% 추락한 러시아 루블에 이어 주요국 통화 중 두 번째로 큰 하락폭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 3월 한 달간으로 좁혀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3월 한 달간 6.9% 하락하며 약 7년 만에 최저치까지 추락했다. 이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휘청이는 터키 리라화(3.3% 하락)보다 더 큰 폭으로 추락한 것이다. 반면 이 기간 브라질이나 호주, 노르웨이 등 자원부국 통화는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전문가들은 안전자산인 엔화 가치가 근래 들어 불확실성이 고조된 시기에 하락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처럼 이례적인 ‘엔저(低) 현상’의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이 손꼽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해 유럽중앙은행(ECB)과 영란은행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긴축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일본은행만 완화 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은행(BOJ)은 지난달 29~31일 10년 만기 국채를 연 0.25%의 금리에 무제한 매입하는 공개시장 조작을 진행했다. 금리가 0.25%를 웃도는 거래에 대해 수요 자체를 말려 장기금리를 일본은행의 목표치인 0.25% 이하로 묶어두겠다는 의도였다.

닛케이는 엔저 현상의 또 다른 요인으로 낮은 경제성장률을 지목했다. 일본은 올해 1월 경상수지 적자로 전환했는데, 여기에 다른 선진국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낮게 유지되면서 일본 엔화가 리스크 회피처로 매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일본과 비슷하게 완화정책을 펼치고 있는 중국 위안화의 경우 달러 대비 견조한 흐름을 보인다는 점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한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까지 2개월 연속 사실상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를 인하했다. 일반적으로는 금리 인하에 따른 위안화 약세가 연출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었으나, 수출 호조와 경상흑자가 위안화 가치를 뒷받침했다.

일본 당국은 이례적인 엔저 현상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달 25일 “엔화 약세가 경제와 물가에 ‘플러스’가 되는 기본 구조는 변함이 없다 ”고 말했다. 일본 제조업체들이 엔화 약세 혜택을 받아 수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엔화 가치 하락으로 석유·가스 수입 비용이 늘어나 가계 부담이 커지고 있어 일부 수출 대기업만 엔화 약세 혜택을 받는다는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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