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이례적인 엔화 약세를 바라보는 시각

입력 2022-04-0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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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

전통적으로 엔화는 안전자산으로 인식돼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고 주식시장이 약세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엔화 가치가 역대급으로 하락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현재 엔화 가치는 달러당 120엔을 웃돌며 2015년 12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가파른 엔화 약세의 배경은 무엇일까? 미국과 통화정책 차별화로 인해 미·일 간 금리 차가 확대된 데다 일본의 경상수지 적자 흐름이 이어지면서 엔화 매도와 달러 매수세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준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며 예상보다 매파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장은 긴축발작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2.5%에 근접했다. 이에 반해 일본 중앙은행은 여전히 완화적이고 부양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10년물 국채금리를 0% 내외에서 유지하는 수익률 곡선 관리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일본 내부적으로는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적자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인식되었던 배경은 일본의 경상수지가 흑자 기조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또 일본은 세계 최대 규모의 대외순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금융시장의 불안 심리가 고조됐을 경우 일본의 대외투자자산이 본국으로 송금되면서 엔화는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의 경상수지는 지난해 12월 적자로 전환됐고 올해 1월에는 2014년 1월 이후 최대 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경상수지 적자 흐름은 엔화 매도와 달러 매수 기조를 뒷받침했다.

과거와 비교해 미국의 물가 상황도 바뀌었다. 지난 20년 동안은 미국의 물가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금융시장의 불안 심리가 커지면 미국 시장금리가 하락하면서 미일 금리 차는 축소될 가능성이 컸다. 이에 엔화는 안전자산 측면에서 강세 압력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은 환경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불거지면서 미일 금리 차가 확대되고 있다. 이는 투기적 목적의 엔화 매도, 달러 매수 거래를 자극할 수 있다.

엔화의 약세 배경으로 언급한 요인들이 2분기에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미국과 일본 간 통화정책 차별화가 지속될 것이다. 미국 연준은 5월과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각각 50bp씩 공격적으로 인상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일본은행은 최근 3월 통화정책 회의에서 현재의 양적ㆍ질적 금융완화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2월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신선 제품 제외)은 전년 동월 대비 0.6% 상승에 그쳐 정책목표(2%)와 격차가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행은 엔저 현상이 일본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일본의 무역적자 흐름도 빠르게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일본 역시 자원 수입국인 만큼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수입 증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같은 엔화 약세가 주식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큰 자동차, 철강, IT 부품 등 국내 수출기업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상존한다. 실제로 아베노믹스 출범 이후 공격적인 부양책을 단행해 엔·달러 환율이 40%나 급등했던 2013~2015년 기간을 살펴보면, 코스피는 장기 박스권에 갇혔던 반면 일본 증시는 80% 넘게 폭등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과거보다 한국 기업들의 제품 경쟁력이 향상되고 프리미엄 입지가 강화됐다. 일본 업체들과의 경합도도 완화됐다. 비가격 경쟁 요인이 커진 만큼 엔화 약세가 미치는 영향이 줄어들 것이다. 환율보다는 주요 수요처 상황이 중요하다. 현재 미국과 중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50pt 선을 웃도는 점, 한국의 수출이 증가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점이 2013~2015년 당시와 구별되는 부분이다.

저금리 국가의 통화를 차입해 고금리 국가 통화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 관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일본 엔화는 캐리 트레이드의 매력적인 대상이고 주식 시장 수급 여건에 긍정적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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