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툴리늄 균주를 둘러싼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간 분쟁이 ‘메디톡스 vs 대웅제약’에서 ‘메디톡스 vs 휴젤’로 옮겨붙었다.
메디톡스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자사 균주와 제조공정, 영업비밀 등을 도용한 혐의로 휴젤과 휴젤아메리카, 크로마파마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고 1일 밝혔다.
이에 대해 휴젤 측은 “메디톡스의 ITC 소송은 근거가 없는 무리한 제소”라며 즉각 반박했다. 특히 휴젤은 “산업 발전과 국가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로 강력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메디톡스 측은 자사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정당한 법적 조치라는 입장이다. 회사가 공개한 소장에는 “휴젤이 자사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 등 영업비밀을 도용해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개발·생산했고, 해당 의약품을 미국에 수출하려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따라서 메디톡스는 “ITC가 휴젤의 불법 행위 조사에 착수해야 하며, 해당 보툴리눔 톡신 제품에 대한 수입금지 명령도 내려야 한다”며 휴젤 제품 판매금지 명령과 마케팅·광고 중지 등을 요청했다.
이날 메디톡스는 정현호 대표 명의로 법적 조치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 지적 재산권을 보호함으로써 회사와 주주의 가치를 극대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이번 조치는 정당하고 올바른 행동이다. 이번 소송은 세계 시장으로 도약하고 있는 K바이오에 정의와 공정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휴젤 측은 1일 입장문을 내고 “메디톡스가 제기한 내용은 전혀 사실과 다른 허위 주장에 불과하다”며 ITC 소송은 근거 없는 무리한 제소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ITC 소송 대상에 이름이 올라간 크로마파마는 휴젤의 미국과 유럽 사업 파트너다. 휴젤아메리카는 휴젤과 크로마파마가 함께 설립한 미국 자회사다.
휴젤 측은 “당사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개발시점과 경위 등 개발 과정 전반에서 메디톡스사의 터무니 없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어떠한 사실이나 정황도 없다”며 “그럼에도 이처럼 무분별한 허위 주장을 제기해 오랜 시간 휴젤 임직원들이 고군분투해서 일궈낸 성과를 폄훼하고 비방하는 행태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특히 휴젤 측은 메디톡스의 제품력과 휴젤의 제품력에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휴젤 측은 기존 언론보도를 인용해 “메디톡스는 제품승인 규격에서 벗어나는 품질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서류 조작 등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유통시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받았다. 중국 내 허가 지연과 미국 라이선스 계약 파기 등 파행적인 경영행보를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당하게 제품을 개발하고 유통해 6년 연속 국내 시장 1위를 점유하고 중국·유럽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해 한국 톡신 산업의 위상을 높여온 업계 1위 기업”이라며 “이제 와서 부당한 의혹을 제기한 것은 당사의 미국 시장 진출이 눈앞으로 다가옴에 따른 전형적인 ‘발목잡기’”라고 주장했다.
휴젤 측은 “정상적으로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근거 없는 허위 주장에 기반한 음해로 타 회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성장을 막으려는 메디톡스의 행태는 산업 발전과 국가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면서 모든 강력한 법적 조치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톡스 전쟁의 1라운드는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이었다. 2016년부터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을 상대로 보톨리눔 톡신 균주 도용 관련 소송, 2019년 1월 미국 ITC에 대웅제약 제소를 진행해 왔다.
이후 ITC는 2019년 3월 공식 조사에 착수하고, 2020년 7월 메디톡스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ITC는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예비판결을 내렸다. 이어 2020년 12월 ITC는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의 영업비밀을 도용해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미국명 주보)를 개발했다고 최종 판결하고, 21개월간 해당 제품의 미국 내 수입 및 판매 금지를 결정했다.
메디톡스는 판결을 토대로 대웅제약의 미국 수입사 에볼루스, 이온바이오파마로부터 합의금과 로열티 등을 받고, 라이선스를 부여하는 합의를 각각 체결했다. 메디톡스는 2건의 합의로 미국 소송 목적을 달성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 6월 미국연방항소법원(이하 CAFC)에 항소철회를 요청했다. 이에 CAFC는 합의로 항소의 실익이 없어졌다며 항소기각(MOOT)을 결정했다.
하지만 대웅제약과 메디톡스의 국내 소송은 진행형이다. 2016년 10월 메디톡스는 대응제약을 상대로 관련 소송을 제기했으나, 올해 2월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2월 대웅제약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2부가 지난 2017년 1월 메디톡스가 대웅제약 등을 상대로 고소한 산업기술유출방지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사건에 대해 지난 4일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대웅제약에 따르면 검찰은 “메디톡스 고유의 보툴리눔 균주나 제조공정 정보가 대웅제약으로 유출됐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웅제약은 “이제는 경쟁사에 대한 음해와 불법행위를 일삼던 메디톡스에게 그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고, 메디톡스 측도 당시 “졸속 수사이자 명백한 과오”라며 “현재 진행중인 국내 민사와 검찰 항고 절차를 통해 반드시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