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종부세의 나라'에서 살아남기

입력 2022-03-0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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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재 정의당 대변인

20대 대선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3월 9일,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를 두고 대한민국의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공약을 비교하면서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하는 말과 글이 눈에 띈다. 두 후보가 이견을 드러내며 대립각을 세우는 영역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지만, 입을 모아 둘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뤄질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슈가 있다. ‘종부세 완화'다. 두 후보 모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종부세 완화를 공약했기 때문이다.

여의도에서 종부세는 정치적 말하기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단어다. 정치적 메시지를 쓰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 많이 쓰게 된 단어를 순서대로 꼽으라면 단연 종부세가 상위권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여의도에 오기 전까지 나는 종부세라는 단어를 한 번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럴 수밖에. 나의 삶이 종부세와 연관이라곤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평생을 세입자로 살아온 부모 밑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종부세의 존재에 대해 들을 일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을 구해 서울로 독립해 나와서도 역시 종부세와 친해질 일은 없었다. 종부세를 내보는 건 언감생심, 주변에 종부세를 내는 사람을 만날 기회조차 없었다.

오히려 내게는 ‘월세 지원’, ‘최저주거기준’, ‘양질의 공공임대주택’ 같은 단어가 보다 필요했고 절실했다. 내 서울 첫 집은 2평짜리 구옥 단층집 셰어하우스 방 한 칸이었다. 연신내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산비탈을 올라야 겨우 닿는 산 끝자락에 있던 그 집을 기억한다. 여름이 되면 벽지에 곰팡이가 무늬처럼 피어나고, 겨울이 되면 벽과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외풍 탓에 점퍼를 입어야 잠들 수 있었던 바로 그 집이 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보증금 1500만 원에 월세 15만 원. 2년 동안 최저임금 수준 급여를 아끼고 모아서 ‘부모 찬스’ 없이 이룬 독립은 스무 살 남짓 되는 청년의 인생에 큰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단돈 만 원이라도 월세를 깎아보려는 나를 보며 그 집 주인은 “어차피 부모님이 대주는 돈 아니냐”고 짜증스러운 듯 물었다. 종부세라는 단어를 알 만큼 여러 채의 집을 가진 부자에게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에 지나지 않았을 터. 강남에 자기 집을 가진 종부세 내본 상당수의 여의도 영감님들에게 나와 같은 세입자 청년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통령 후보는 그 사실을 국민 앞에 가감 없이 폭로한 바 있다. "제가 대한민국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위원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회 테이블 위에는 44% 집 없는 서민 이야기, 또 최저 주거 기준 이하, 이른바 지옥고에 사는 200만 가구 시민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오로지 강남 집값, 서울 집값만이 이야기됩니다, 여러분."

씁쓸한 현실이다. 방 한 칸 월세 살기 위해 빚을 내며 삶을 꾸려가는 청년이 날마다 늘어가는 현실에 종부세가 폭탄이라며 스스로 ‘폭탄 제거반’을 자처하는 사람이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라고 한다. 용적률 500%와 LTV 90%를 말하는 여당 후보도 희망 없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에 이렇게 집이 많은데 내 집은 없다는 말을 한 번이라도 읊조려본 사람이라면, 그가 추가로 지어 빚내서 사라는 집들이 나에게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종부세의 나라가 된 것인지 알 길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부세의 나라에서 끝내 살아남고 싶다. 평생을 죽어라 일하면서 저축해도 종부세 고지서 대신 치솟는 월세 고지서만 받게 될 사람들과 함께, 집 걱정 없는 나라 꼭 한 번은 보고 싶다. 정의당이 해야 할 일이 많다.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 앞에 한 약속부터 제대로 지키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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