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열흘이 넘었다. 짧은 기간으로 보이지만 그 사이에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화하면서 천연가스와 원유, 팔라듐, 밀 등 러시아에 의존하는 자원과 농산물의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이른바 ‘우크라이나 쇼크’다. 세계 주요 연구기관과 미디어들이 이 쇼크를 차트화해 소개하고 있다. 이 차트들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자원·농산물 가격’과 ‘주가·통화·금리’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매일 관련 항목의 변동치를 정리해 준다. 이런 일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러시아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3위 산유국으로 세계 석유 생산량의 약 10%를 차지한다. 유럽은 천연가스의 40%를 의존하는 등 러시아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자동차의 배기가스 정화 촉매에 사용하는 귀금속인 팔라듐은 러시아가 세계 산출량의 40%를 차지한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이고 우크라이나도 세계 유수의 생산국이다. 한편 러시아의 주가지수와 통화 루블화는 우크라이나 침공과 구미의 경제제재 등으로 크게 하락했다.
열흘 전까지만 해도 관측통들은 세계경제가 인플레이션에 머물 것이냐, 경기침체가 동반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악화될 것이냐에 주로 신경을 썼다. 우크라이나의 위기적 상황은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지만 러시아의 실질적인 무력침공과 이로 인해 세계 경제가 대형 악재에 휘둘릴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 같다.
뒤돌아보면 관측통들의 한계는 지난 2020년 이후 지금까지 만연하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사회적 영향을 분석하고 그 향방을 전망하는 데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관측통들은 실업률, 물가, 임금 등에 대한 영향을 여러 가지 예측 모델이나 이론을 동원해 파악하려 하고 있지만 누구도 일자리와 성장을 극대화할 만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 원인을 절대적인 정보부족에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시의적절한 데이터 수집과 활용이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경제계에서는 정보의 질과 적시성을 중시하는 ‘실시간 경제(real-time economy)’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예컨대 미국 아마존닷컴부터 넷플릭스까지 빅테크들은 신선 식품의 배송 상황을 비롯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빠져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이미 실시간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팬데믹 상황을 주시하면서 레스토랑 예약 상황과 카드 결제 추적 등을 시도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나 센서, 즉시 결제가 당연해지면 경제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관측할 수 있는 힘이 커질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로 인해 공적 부문의 의사결정이 개선될 전망이 열리는 반면 각국 정부가 권력을 남용하려는 충동도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테크놀로지가 경제에 침투하면서 ‘실시간 경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소비의 대부분은 온라인으로 바뀌고 거래 처리는 고속화되고 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통화(CBDC)는 머지않아 경제 상황에 관한 리얼타임의 상세한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이미 CBDC의 실증 실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 밖에도 50개국 이상이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적시 데이터를 입수할 수 있게 됨으로써 정책 실패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1년, 6개월, 수주 뒤에 발표되는 통계로는 경제활동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적절한 데이터가 있으면 위기 때 집중적인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 아울러 실시간 경제혁명에 의해 한층 더 정확하고 투명성이 높은 룰에 근거한 경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실시간 경제 혁명을 몰고 왔고, 그 진화를 코로나와 우크라이나에서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한국도 실시간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의 과학화를 서둘러야 한다. 대선 후보들이 외치는 과학기술중심국가나 과학기술강국도 여기서 비롯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