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게임업체 ‘넥슨’의 창업주인 김정주 NXC(넥슨 지주사) 이사가 지난달 말 미국에서 별세했다. 향년 54세. 김 이사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앞으로 넥슨의 지배구조와 신사업 발굴 및 사업 방향 등에서 변화가 나타나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김 이사가 보유한 NXC 지분은 총 196만3000주로 전체의 67.49%에 달한다.
지주사인 NXC가 넥슨·넥슨코리아 등 게임 기업을 갖고 있는 형태인 만큼 김 이사의 부재로 지분 변동이 불가피하단 전망이 나온다. NXC가 일본 증시에 상장한 넥슨 지분 28.5%를 보유하고 있고, 투자법인 NXMH를 통해 18.8%를 확보하는 등 해외 계열사를 통한 지배구조가 확립해 있는 상황에서 지주사 최대 주주인 김 이사의 공백으로 남은 지분을 정리하기가 까다로울 것이란 분석이다.
김 이사는 조 단위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김 이사는 국내 부호 순위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5월 말 기준 자산 규모는 약 109억 달러(약 13조 원)로 추산됐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세계 500대 부자 순위에서 김 이사는 세계 476위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212위), 김범수 카카오 의장(225위),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명예회장(238위),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434위) 등에 이어 다섯 번째에 올라 있다.
다만 이미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립돼 있어 넥슨과 NXC의 경영권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7월 김 이사는 NXC 대표이사를 내려놓으며 “지주회사 전환 후 16년 동안 NXC 대표이사를 맡아왔는데, 이제는 역량 있는 다음 주자에게 맡길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고 언급했다. NXC 신임 대표에는 이재교 브랜드홍보본부장이 선임됐다. 김 이사는 생전에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경영권을 가족에게 승계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재 넥슨 일본법인과 넥슨코리아도 오웬 마호니 대표와 이정헌 대표가 각각 이끌고 있다.
NXC가 전문경영인 체제인 만큼 김 이사의 공백으로 인한 급격한 변화는 예상되지 않는다. 다만 일각에선 향후 신사업 발굴 등에서 차질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가상화폐 사업이다. 앞서 김 이사는 가상자산에 관심이 적지 않았고, 실제 2017년 NXC를 통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 지분 65.19%를 인수했다. 넥슨 역시 김 이사의 뜻을 이어 지난해 4월 1억 달러 규모의 비트코인을 매수하는 등 관련 투자를 단행했다. 넥슨 안에서의 김 이사의 상징성, 신규 사업 발굴 및 투자 등에서 주요 의사결정을 해 온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방향에서 그의 빈자리가 드러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IP(지식재산권) 사업은 계획대로 진행될 것으로 점쳐진다. 넥슨은 올해 1월 세계적인 영화감독 루소 형제와 마이크 라로카가 설립한 AGBO 스튜디오에 약 6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며 IP 확장을 꾀했다. 영화와 TV 등 자체 IP를 통한 영상 사업 추진을 가속화 한다는 전략이다. 지난 2020년에는 미국의 완구회사 해즈브로와 일본의 게임사 반다이남코, 코나미 등에 1조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했다. 다양한 플랫폼과 게임 IP를 결합해 글로벌 종합 콘텐츠 기업을 실현한다는 목표다.
한편, 김 이사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벤처 및 게임업계에선 이틀 연속 애도의 목소리를 이어지고 있다. 김 이사와 대학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내가 사랑하던 친구가 떠났다”며 “살면서 못느꼈던 가장 큰 고통을 느낀다”며 슬퍼했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은 “고인의 개척자적인 발자취는 우리에게 큰 족적을 남겼다”며 “항상 게임업계의 미래를 고민하며 걸어온 고인의 삶에 깊은 애정과 경의를 표하며, 오랜 게임업계 동료로서 무한한 슬픔을 느낀다”고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