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허울 좋은 주 4일제 공약

입력 2022-02-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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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 첫 번째가 재택근무다. 많은 기업들이 방역을 위해 원격근무를 도입했다. 부분적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들은 사내에서 감염자가 나올 때마다 직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소독을 한 다음 다시 회사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두 번째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일고 있다. 주 4일 근무제다. 최근 국내외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은 ‘주 4일 근무제’가 자주 장식한다. 지난달 영국 메릴본에 있는 5성급 호텔 더랜드마크런던은 셰프들 급여를 올려주고 주 4일 근무제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일본 캐논카메라는 영국 법인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주 4일 근무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고, 그로부터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캐논의 일본 경쟁사인 파나소닉도 직원들의 워라밸을 위해 4일 근무제를 옵션으로 제공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영국 아톰뱅크, 유니레버 뉴질랜드 법인, 아이슬란드, 스페인, 아랍에미리트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근무 일수를 줄이려는 계획들이 잇따라 나왔다.

20대 대선이 막바지로 치닫는 한국에서도 일부 대선주자들이 주 4일, 혹은 주 4.5일 근무제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선도적으로 주 4일 또는 주 4.5일제를 도입한 기업에는 다양한 방식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노동시간 단축을 확산시키겠다”고 했고,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생산성을 높이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수단으로 중요하다”며 주 4일 근무제를 약속했다.

주 4일 근무제에 대해 ‘4일 동안 35시간 이상 풀타임으로’ 일하라는 걸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주 4일 근무제는 5일간 하던 일을 4일 동안 압축해서 하라는 게 아니다. 4일 동안 약 32시간을 일하고 3일의 주말을 누리라는 것이다.

이게 급진적인 생각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인류는 19세기 후반부터 일하는 시간을 점차 줄여왔다. 1890년 미국 정부는 제조 공장에서 정규직 직원이 일주일에 평균 100시간 일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다가 20세기 중반까지 제조업 종사자들의 근로 시간은 주 40시간으로 줄었다. 주 4일 근무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근로 시간을 32시간으로 줄인다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생겨난 새로운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스탠퍼드대학 연구에 따르면 근로 시간이 길다고 반드시 생산성이 높은 건 아니다. 뉴질랜드에 본사를 둔 페퍼추얼가디언이 주 4일 근무에 대한 시험 연구를 한 결과, 직원들은 동일한 생산성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직무 만족도, 팀 워크, 워라밸, 회사 충성도 등도 향상됐다. 스트레스도 덜 경험했다고 한다.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같이 세계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나라 중 일부가 주당 평균 27시간 일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주 4일 근무제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미국 유타주가 공무원을 대상으로 시험한 결과, 10개월 동안 에너지 비용에서 180만 달러를 줄일 수 있었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소 6000톤 줄이는 효과를 봤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주 4일 근무제 도입이 본격화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젊은 경영자가 은퇴해야 할 나이든 경영자보다 주 4일 근무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차터드매니지먼트인스티튜트에 따르면 35세 미만의 고위 경영자 중 거의 80%가 주 4일 근무제를 긍정적으로 봤고, 55세 이상에서는 56%가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 4일 근무제의 타당성에 대한 근거들은 이외에도 차고 넘친다.

문제는 돈이다. 우리나라 대선주자들이 내놓은 주 4일, 혹은 주 4.5일 근무제는 현실과 괴리가 있다. 생산성 향상과 고용 확대, 더 나은 삶 영위. 말은 좋다. 하지만 이는 정작 당사자인 근로자들의 주된 관심사를 비켜 간 허울 뿐인 공약에 가깝다. 근로자들은 묻는다. “더 적은 시간 일을 하면서 기존과 동일한 급여를 받을 수 있느냐”고.

전염병이 창궐하는 가운데 재택근무도 못 마땅해하는 고용주가 수두룩한데, 주말을 3일로 늘린다면 어느 고용주가 동일한 급여를 보장할까. 4차 산업 혁명에 겨우 발가락만 담갔을 뿐인데, 전 국민 기본소득제를 운운하며 주 4일제를 약속하는 것, 동일 급여도 보장 못하면서 삶의 질 향상만 내세우는 것. 이대로라면 근로자들은 차라리 주 5일 근무 유지를 원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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