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을 지키기 위해선 안전관리 인원이 필요한데 아무도 오지를 않습니다. 생계유지가 목적인 중소기업들은 회사 경영난으로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3일 앞둔 24일, 충남 천안의 장수 뿌리기업 신진화스너공업에서 제조 중소기업 대표들이 모여 이같이 말했다. 중소기업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력난이 가중된 상황에서 새롭게 도입될 처벌법으로 안전관리자까지 채용해야 하는 설상가상 형국을 맞고 있다.
신진화스너공업은 볼트·너트 같은 ‘파스너’(분리된 것을 잠그는데 쓰는 기구)를 제작하는 중소기업이다. 1969년에 설립된 이후 충남지역에서 최근 첫 중소벤처기업부의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오랜 기간 무사고로 기업을 이끌어 온 정한성 대표도 최근 근심이 많아졌다. 정 대표는 “안전재해를 줄이기 위해 충분히 조치했음에도 노동자로 인한 부주의 사고까지 처벌받게 되는 것이 중소기업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 관리 소홀로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숨질 때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중소기업들은 지금의 중대재해처벌법은 현실적으로 준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개최된 중소기업중앙회 노동인력위원회 현장 간담회에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혼란과 두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목소리가 나왔다. 뿌리산업, 건설기계, 고소작업대 등 중소기업 대표들은 인력난과 더불어 현재 사업주만을 처벌하는 법에 입법보완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남 밀양의 열처리 기업을 운영하는 주보원 중기중앙회 노동인력위원장은 “산업재해는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기 어려운 분야인데 중대재해처벌법은 징역 1년 이상이라는 하한 규정 등 지나치게 사업주 처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법상 사업주 의무사항이 너무 모호하게 규정돼 있어 많은 중소기업이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창웅 한국건설기계정비협회장은 “많은 정비기술자는 이미 90% 이상이 50대부터 70대까지 초고령화로 진입한 것이 현 실정이다”며 “건설기계정비업계에서는 젊은 사람을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중대재해, 즉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가장 큰 요인은 산업현장의 고령화라고 생각한다”며 “고령화된 산업현장이 완화되기 위해선 비선호 일자리를 선호하는 일자리로 만드는 정부의 책임과 역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길수 한국고소작업대임대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중대재해 사고는 대부분 돈 때문에 발생한다”며 “최저가 낙찰제에 이어 처벌법으로 압박받는 하청 업체를 지원하기 위한 세금 감면과 비용 지원을 하는 보상 대책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국내 전체 산업재해의 약 80~90%는 중소기업에서 발생하고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산재가 중소기업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산재 상황에도 중소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준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중소기업들은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안내 가이드만 전달받았지 현장의 어려움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다.
최근 중기중앙회 설문에선 50인 이상 중소 제조업체의 53.7%가 ‘중대재해처벌법 의무사항을 준수하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특히 그 이유에 10명 중 4명이 ‘의무·이해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곧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요구하고 있으며, 관련 인력 채용을 준수하지 못하면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자가 처벌을 떠안게 된다.
이날 중소기업계는 △정부에는 시설개선과 전문인력 채용에 대한 비용 지원을 △국회에는 고의나 중과실 없는 경우 면책 가능한 조항 신설을 △근로자들에게는 안전수칙 준수 등 현장에서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이태희 중기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은 징역 하한 등 처벌이 강한 법임에도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경우 면책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는 점은 전문가들도 지적하는 객관적인 문제”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보완이 시급하며, 최소한 정부 컨설팅 등을 활용해 안전관리체계 구축에 최선을 다한 중소기업의 경우 의무이행 노력에 대한 적극적인 인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