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정부의 방역패스(백신접종증명서·음성확인제) 효력이 서울 마트, 백화점 등에서는 정지된다. 서울시에 한정된 법원 판단이지만 각 지자체를 대상으로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정부 방역 정책에 일부 제동이 걸리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재판장 한원교 부장판사)는 14일 조두형 영남대 의대 교수 등 1023명이 보건복지부 등을 상대로 낸 방역패스 효력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재판부는 방역패스 의무적용 17종 시설 중 ‘상점, 마트, 백화점’에 대한 서울시의 방역패스 효력을 중단하도록 했다. 질병관리청, 보건복지부에 대한 신청은 각하했다.
재판부는 “마트, 백화점은 많은 사람이 모일 가능성은 있기는 하나 취식이 주로 이뤄지는 식당·카페보다는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볼 수 있고 오히려 밀집도 제한, 방역 수칙 강화 등으로 위험도를 더 낮출 방법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생활필수시설에 해당하는 전체 면적 3000㎡ 이상의 마트 등을 일률적으로 방역패스 적용대상으로 포함시켜 백신미접종자 출입 자체를 통제하는 불이익을 준 것은 지나치게 과도한 제한”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등이 방역패스 관련 방역수칙을 작성하거나 시행 지침을 마련한 것은 항고소송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를 상대로 소송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유사한 판단이 이어지면 정부 방역패스 정책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특히 청소년에 대한 방역패스는 추진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점쳐진다.
앞서 법원은 스터디 카페, 독서실 등에 대한 방역패스 적용 효력을 정지한 바 있다. 이번 사건에서는 서울시 12~18세 청소년 방역패스는 17종 시설에 대한 집행정지를 모두 인용했다.
재판부는 “방역패스 도입으로 인한 공익에 비춰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중증화율이 현저히 낮고 사망사례가 없는 청소년들을 방역패스 적용대상으로 삼는 것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제한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군다나 청소년의 경우에는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이상반응, 백신 접종이 신체에 미칠 장기적 영향 등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개개인의 건강상태 등을 종합해 백신 접종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성인보다 더 크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청소년의 경우에는 코로나19에 감염된다고 하더라도 위중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청소년에게 방역패스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해 코로나19 중증화율이 상승하는 등 공공복리에 중대한 악영향을 초래할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법원이 의료 전문적인 의견을 덧붙이며 판단을 내리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면, 법치주의 국가에서 마땅히 판사 판결을 존중해야 하고 오히려 의료 전문적인 내용에 대해 충분하고 상세하게 소명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교수(호흡기내과)는 “아이들은 걸려도 사실 중환자로 안가지만, 어른들이 섞여 있는 장소에 청소년이 자유자재로 들락날락하면 해마다 유행하는 독감처럼 (코로나19가)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도 “법치국가에서 어떤 판단이든 판사가 하게 돼 있는 것은 당연하다”며 “다만 복지부가 충분히 방어를 했느냐인데 탄탄하게 하지 못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법원 판단에 유감을 표명했다. 17일 정리된 입장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박유미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백화점, 마트 등 방역패스 적용은 법원결정 취지, 방역상황 등에 대해 중수본과 긴밀히 협의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