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지민이 2022년 임인년(壬寅年)을 맞아 관객들에게 새해 인사를 건넸다. 2021년을 스스로 '그래프 높낮이가 있던 해'라고 정의한 그에게 새해는 더욱 특별하다.
한지민은 "'해피 뉴 이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심장의 떨림이 느껴진다"며 "새해를 맞아 새로운 시작점 앞에 선 설렘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런 그가 소박한 행복을 함께 나누기 위해 밝고 유쾌한 멜로 영화로 관객을 만난다. 영화 '해피 뉴 이어'(감독 곽재용)를 통해서다.
최근 화상으로 한지민을 만났다. 그는 "한 해를 마무리할 때 아쉬움도 있지만, 새해가 다가오면 누구나 희망을 조금씩 품게 되지 않느냐"며 "'해피 뉴 이어!'라는 인사가 모두에게 따뜻하게 다가가서 사랑이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피 뉴 이어'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호텔 엠로스를 찾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인연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한지민, 이동욱, 강하늘, 임윤아, 원진아, 이혜영, 정진영, 김영광, 서강준, 이광수, 고성희, 이진욱, 조준영, 원지안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메가폰은 '클래식' '엽기적인 그녀'의 곽재용 감독이 잡았다.
한지민은 옴니버스 영화의 매력에 대해 "한 작품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다채로움이 있다"고 말했다. "촬영하면서 제 분량이 아닌 로맨스 지점들이 너무 궁금한 거예요. 그래서 현장 가서 다른 사람들 찍은 거 보여달라고 하기도 했어요. 남의 작품 보듯 설레하면서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남아요. 또 다른 장점은 체력적으로도 덜 힘들어요. 개봉할 때쯤 마음의 압박감도 N분의 1이 돼요."
한지민은 "'해피 뉴 이어'라는 작품을 만나 바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고 했다. "무난한 걸 좋아하는데, 2021년은 어렵게 시작했어요. 저 역시도 심적으로는 아주 힘든 한해였죠. 감사하게도 '해피 뉴 이어'를 만나 제가 그나마 빛이 있는 곳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한지민은 재작년 할머니를, 작년엔 외할머니를 떠나 보내야 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준비하던 드라마의 진행도 중단되면서 배우로서 막막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노희경 작가님께서 다른 작품으로 제게 기회를 주시고, 평소 함께 작업하면 가장 행복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준익 감독님하고도 함께 하며 현장에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여름이 지나고 나서는 배우로서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어렵게 시작한 해였지만, 덕분에 버라이어티하게 많은 작품을 동시다발적으로 연기하고, '해피 뉴 이어'까지 보여드릴 수 있게 돼서 기뻐요."
다음은 한지민과 일문일답.
- 2022년 새해 계획은 세웠나.
"옛날에는 계획을 정말 잘 세웠어요. 왜 그렇게 계획표를 잘 짰는지 모를 정도로요. 그런데 계획을 해내지 못하면 스스로가 마음에 안 들고 '나는 실패자'라는 생각이 강해지더라고요. 지금은 계획을 열심히 세우진 않아요. '어떤 일을 이뤄내야지'라는 것 자체가 제겐 무겁게 다가오는 편이고, 한 치 앞도 못 보는 게 인생인데 계획 한다는 거 자체가 막연한 것 같아서요. 다만 매년 똑같은 계획은 '건강'이에요. 예전엔 주변 분들의 건강을 신경 썼다면, 지금은 나란 사람 자체가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연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어요. 제 몸을 많이 챙기게 됐죠. 작품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그걸 잘 해내는 게 임무이자 책임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제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겠지만, 작품을 만났을 때마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단 생각도 했어요. '쉴 수 있을 때 잘 쉬고 놀 수 있을 때 잘 놀자'는 것도 계획이 됐어요."
- '해피 뉴 이어'는 한지민(소진 역)의 미묘한 감정선이 잘 드러난 영화다. 인상적인 장면이나 명장면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사랑스럽거나 코믹한 모습을 표현할 요소가 많다고 예상하지 못했어요. 막상 현장에 가니 감독님께서 재밌거나 귀엽거나 사랑스러운 장면을 많이 연출해주셔서 그 안에서 새로운 표정을 지어낼 수 있었죠. 덕분에 기존에 많이 보여드리지 못한 표정이 담긴 것 같아요. 이진욱 씨를 만났을 때 구두 굽을 혼자 부러뜨리는 장면도 그저 열심히 뜯었는데 잘 안 뜯겨서 힘쓰는 표정들이 귀엽게 담겼더라고요. 가끔 '만화적인 느낌의 표현이 괜찮을까' 생각도 했는데 막상 편집본을 보니 그 안에 다채로운 표현이 담긴 것 같아요. 감독님께 감사드려요."
- '해피 뉴 이어'가 극장과 티빙에서 동시 공개됐다. 스크린과 OTT로 동시에 관객을 만난 소감은.
"개봉을 앞두고 떨리는 마음으로 긴장하며 잠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티빙' 있었다는 걸 까먹은 거예요. 부랴부랴 접속했는데 '해피 뉴 이어'가 떠 있더라고요. 기분이 묘했어요. 예전엔 극장에 찾아가서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본다는 의미가 컸다면,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기도 했고 모두가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극장까지 걸음 하지 않으시고도 집에서 영화를 접할 수 있게 됐어요. 영화라는 매체가 좀 더 가깝게 다가온 것 같아요. 묘하지만 반가웠어요."
- 로맨스의 장인이라 불리는 곽재용 감독과 작업한 소감은.
"감독님의 작품을 제가 어릴 때부터 봐왔어요. 팬이에요. 감독님과 같이 작업할 수 있다는 것도 작품 선택에 이유가 됐죠. 첫 미팅 때 감독님이 저를 반갑게 맞이해주시면서 환하게 웃어주셨어요. 그 맑은 느낌의 웃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어요. 현장에서도 아이같이 순수한 모습으로 즐거워하시면서 디렉션을 주셨고요. 오래도록 멜로나 로맨스 장르를 연출하시는 게 쉽지 않으실 거 같아요. 감독님의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모습이 있기에 멜로를 순수하게 보셔서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 극 중 키보드를 치는 장면이 있는데 직접 연주한 건가.
"네, 너무 어려웠어요. 캐논 변주곡을 리메이크해서 연주해야 했거든요. 거기에 노래도 불러야 했는데, 음이 너무 높았어요. 감정까지 담아 건반을 보지 않고 연주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빠른 템포이기도 해서 최대한 손에 많이 익힌 상태로 노래할 수 있도록 연습했어요. 저 나름대로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원래 계획엔 제 목소리로 노래가 담겨 나가는 것이었는데, 제 목 상태랑 상황들이 여의치 않아서 100% 제가 준비한 만큼 못보여드린 것 같아요."
- 소진은 항상 같은 계단에서 발이 걸려 넘어지는 인물이다. 그 장면을 엄청 여러 번 촬영했을 텐데.
"넘어지는 장면을 찍으면서 '현실적인 걸까' '이 정도면 허당을 넘어 부족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고, 감독님한테 물어보기도 했어요. 처음엔 감독님이 어떤 생각으로 많이 찍으시는 건지 이해가 안 된 상태로 8~9벌 옷을 입었었어요. 계절감이 느껴지도록 머리와 옷도 많이 바꿔서 촬영해야 했거든요. 그러다 현장 편집으로 붙인 걸 봤는데 의외로 웃긴 거예요. 하나하나 찍었을 땐 제가 매번 넘어지는 동작을 바꿔가면서 한다는 게 어려웠어요. 미끄러지듯 넘어져야 하니 안전함에서도 불안했고 자연스럽지 않은 것도 걱정했어요. 음악을 템포감 있게 편집해주셔서 자연스럽게 나온 거 같아 다행이에요."
- 소진을 연기하면서 가장 공감됐던 부분은?
"저도 사실 친구를 좋아해 본 적이 있어요. 좋아하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함께 모임을 했을 때도 티 안 나게 행동해야 했죠. 둘만 있는 게 아니고 친구들과 같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신경이 그 친구에게 갔죠. 남몰래 관찰했던 경험이 저 역시 있어서 공감됐어요. 저는 짝사랑이 더 편했어요. 혼자 좋아하는 마음도 나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어릴 때는 제가 좋아하는 친구를 제 친구가 더 좋아하면 심지어 둘을 연결해주려고 노력까지 했어요. 하하. 그래서일까요. 제가 소진이었어도 승효(김영광 분)이 다른 여자에게 청혼하는 걸 봤을 때 가슴이 아프고 슬퍼도 마냥 축하해줬을 것 같아요."
- 전작 '미쓰백'(2018) '조제'(2020) 같은 어두운 분위기의 배역을 할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와 밝은 분위기의 배역을 할 때 느껴지는 만족감의 차이가 있나.
"어두운 캐릭터를 할 때는 과정이 정말 매우 괴로워요. 제 가장 냉정하게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가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관객에겐 어두운 캐릭터가 전달해주는 공감대의 폭이 넓은 것 같아요. 감정 자체가 어둡게 깔렸다가 한 방에 표출해낼 때 깊이감이 있고 여운이 있거든요. 만들어가는 과정은 괴롭더라도 결과물이 나왔을 땐 큰 산을 하나 넘은 듯한 느낌이 들어요. 반면 밝은 기운의 캐릭터는 준비할 때, 현장에 갈 때 모두 행복감을 가져갈 수 있어서 좋아요. 일상이나 평범함에서 전달할 수 있는 공감대도 분명히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 데뷔 20년 차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면.
"처음 연기 시작할 때는 마냥 너무 어렸어요. 제가 오래 할지도 몰랐고요. 30살이 되면 수많은 감정을 지금보다 낫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 거란 막연한 기대감만 있었어요. 지금은 오랜 시간 배우로서 활동했다는 점이 가끔 신기하기도 해요. 가끔 해이해질 때마다 부족한 저에게 연기할 기회가 꾸준히 와준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는 걸 생각하곤 해요. 그렇게 과거에 쌓아온 시간을 떠올리죠. 모든 작품들을 만난 덕에 조금씩 변화할 수 있었어요. 눈에 띄게 바뀐 큰 계기는 없지만, 기반들이 갖춰졌기 때문에 어느 순간 '한지민의 이 모습은 처음 본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 같아요."
- 어떤 사랑을 하고 싶나.
"계산하지 않고 감정의 흐름대로 주저하지 않는 사랑을 해보고 싶어요. 저희 대표님이 제가 '미쓰백'으로 상을 받았을 때 해주신 말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요. '이제는 마음껏 사랑만 하면 되겠다'고 하셨어요. 뜨겁고 열정적으로 사랑해보고 싶어요. 아주 용감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