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테크(대형 IT 기업)가 유발하는 트래픽이 늘어난 가운데, 이들이 네트워크 구축 비용 등 일종의 ‘망 사용료’를 부담해야 한단 의견이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와 망 사용료 관련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국내 이동통신 업계도 세계의 반응을 주시하게 됐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도이치텔레콤, 보다폰 등 13개 유럽 이동통신사 최고경영자(CEO)는 글로벌 IT 기업이 망 구축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서 13개 통신사 CEO는 “대규모의 네트워크 트래픽이 빅테크 기업에 의해 발생하고 또한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네트워크 투자를 필요로 한다”고 지적했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빅테크에 의해 네트워크 트래픽 상당 부분이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지난해 유럽 통신 분야 투자 규모는 약 525억 유로(약 71조 원) 규모로 6년래 최고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들은 “유럽연합(EU) 시민들이 디지털 전환으로 하여금 이익을 볼 수 있게 하는 사업 모델은 빅테크 기업이 네트워크 비용을 정당하게 부담할 때만 지속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사실상 망 구축 비용을 부담하라는 의도다.
사실상 넷플릭스, 구글, 페이스북(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를 저격한 것으로 풀이된다. 성명에 기업 이름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넷플릭스와 메타, 유튜브를 운영하는 구글 등이 최근 네트워크 트래픽을 대거 발생시키는 만큼 이들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넷플릭스를 비롯한 해외 빅테크 기업의 망 사용료 부담에 대한 논의에 불이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유럽에서도 영국 방송통신규제청(OFCOM)이 망 사용료 부과 근거를 찾는 작업에 돌입했고, 미국에서도 넷플릭스, 유튜브 등 동영상 콘텐츠 제공 기업의 네트워크 트래픽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 브랜든 카가 “빅테크가 네트워크를 유지ㆍ관리하고 구축하는데 필요한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인터넷 인프라를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발표하면서다.
빅테크의 망 사용료 관련 논의는 한국에서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넷플릭스와 국내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간 갈등이 대표적이다. 넷플릭스는 “세계 어디에서도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며 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SK브로드밴드를 비롯한 국내 ISP는 네트워크로 인해 발생하는 트래픽 양이 상당하고, 국내 콘텐츠 제공자(CP)와의 역차별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이를 부담할 것을 요구한다.
그간 넷플릭스는 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며 트래픽을 줄이는 자체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오픈커넥트(OCA)’를 사용할 것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OCA를 활용하고 있는 유럽 지역에서 망 사용료 관련 논의가 지속할 경우 넷플릭스도 이를 부담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OCA는 국내에는 없지만 홍콩과 일본에 각각 설치돼 있다.
이에 따라 넷플릭스와 법정 공방을 이어가고 있는 SK브로드밴드 측에 힘이 실릴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빅테크와의 망 사용료 관련 분쟁이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닌 만큼 해외에서도 소송이나 협상 과정을 주시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지난 9월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에 부당이득반환 청구 반소를 제기해 다음 달 변론준비기일을 앞두고 있다. 앞서 넷플릭스가 제기한 망 이용대가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의 후속 조치다. 당시 소송에서는 SK브로드밴드가 승소했으나 넷플릭스가 항소해 2심도 진행해야 한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유럽에서도 넷플릭스나 페이스북, 구글 등 트래픽이 늘어나면서 망 사업자인 통신사들이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며 “최근 OTT 서비스가 몇 년 새 증가하면서 트래픽 역시 함께 늘어나고 있는 만큼 다른 나라에서도 이와 관련한 이슈가 퍼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