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미국 내 신규 파운드리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 부지로 텍사스주 테일러시를 최종 선정했다. 이번 투자는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중 역대 최고 규모로 주목받았지만, 주가는 영 시원찮다.
◇‘소문난 잔치’에도 반대로 흘러가는 주가 = 삼성전자는 이날 전 거래일보다 0.66% 내린 7만48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장 초반 최고 7만6200원까지 치솟으면서 ‘8만 전자’의 기대감을 드러냈으나 이내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 1월 초 장중 9만6800원(1월 11일 기준)을 기록하며 ‘10만 전자’를 바라보다가 하반기 들어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외국인의 거센 매도세로 주가가 6만 원대로 내려앉기도 했다. 500만 명이 넘는 소액주주를 가진 ‘국민주’임에도 주가는 맥을 못 추는 상황이다. 이달 들어 동학개미들(개인투자자)의 이탈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날 삼성전자는 미국 내 신규 파운드리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 부지로 텍사스주 테일러시를 최종 선정했다고 밝혔다.
테일러시에 세워지는 신규라인은 내년 상반기에 착공해 2024년 하반기 목표로 가동될 예정이다. 건설·설비 등 예상 투자 규모는 170억 달러(약 20조2000억 원)에 달한다.
김기남 부회장은 “올해는 삼성전자 반도체가 미국에 진출한 지 25주년이 되는 해로, 이번 테일러시 신규 반도체 라인 투자 확정은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찍이 외신의 관심도 대단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날 삼성전자와 관련해 “텍사스주의 그레그 애봇(Greg Abbott) 주지사가 경제 관련 발표를 할 예정”이라고 사전 보도하면서 전 세계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영국 로이터통신도 지난 9월 말 소식통을 인용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 건설 계약 건을 보도했다.
◇‘8만 전자’ 머나먼 꿈일까 = 주가 하락에도 증권가에서는 올해 4분기를 두고 ‘삼성전자의 비중을 확대할 적기’라고 말한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중국 내 반도체 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미국, 유럽, 일본 등은 반도체 보호주의 정책 강화로 자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 요구가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삼성전자의 결정은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하는 ‘미ㆍ중 간 은밀한 패권 전쟁’의 결과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도체 공급망 문제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동안 현지 반도체 생산기지를 유치하려고 공을 들였다. 특히, 바이든 정부는 신설되는 반도체 제조 공장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미국 반도체생산촉진법(CHIPS for America Act)도 발의하면서 미중 경쟁에서 승기를 잡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가운데 김 연구원은 “100조 원 순현금을 확보한 삼성전자는 세계 각국의 반도체 보호주의 정책(자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에 적극 대응이 가능한 유일한 반도체 업체”라고 평가했다.
이어 “미국의 중국 내 반도체 투자 제동이 향후 반도체 생산증가와 중국의 시장교란을 제한시켜 향후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 긍정적 영향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증권 전문가들은 지금이 시점상 주가 상승을 염두할 시기라고 입을 모았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4분기부터 시작해 내년까지 이어질 메모리 반도체 다운 사이클은 최근 10개월간 지속된 주가 하락에 대부분 반영됐다”면서 “주가가 업황에 6개월가량 선행하는 속성을 감안했을 때 현 시점에는 추가적인 주가 하락보다는 상승을 염두에 둔 투자전략이 적합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도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10개월간 삼성전자 주가는 15.4% 하락하면서 대부분의 우려를 선반영했다”라며 “10개월간의 충분한 주가 조정이 있었다”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