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984’로 유명한 조지 오웰의 산문집 ‘코끼리를 쏘다’의 한 대목이다. 당장 코끼리를 쏠 생각이 없었던 그는 코끼리를 쏠 것이라고 서로 흥분하고 야단법석을 피웠던 군중에 이끌려 결국 코끼리를 쏴 죽이고 만다. 한 발, 두 발…. “두 방을 맞고도 놈은 아주 쓰러지지 않았고, 머리를 축 떨군 채 비틀거리며 필사의 힘을 다해 서서히 다리를 펴고 일어섰다”는 대목도 있다. - 11월 4일 자 [김남현의 채권 왈가왈부] 한은 코끼리를 쏠까 기사 재인용.
한국은행 11월 금융통화위윈회 기준금리 결정이 이번 주 25일로 다가왔다. 예상 밖으로 다소 이른 시점이었던 8월 첫 인상 이후 이번 금통위에서도 기준금리를 1.00%로 인상할 것이란 관측이 대세다.
최근 이투데이가 증권사 채권전문가 1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전원이 금리인상을 예상했다. 한은 역시 이미 금리인상을 예고한 바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10월 금통위 기자회견에 이어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도 “특별한 큰 위험이 없는 한 11월 기준금리 인상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고, 최근 공개된 10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복수의 금통위원들은 11월 금리인상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관심은 내년 1분기로 쏠린다. 내년 3월 초 대통령선거와 3월 말 이주열 총재 임기 종료라는 이벤트를 앞두고 한은이 얼마나 더 추가 인상에 나설지 주목하는 것이다.
일단 채권시장 분위기는 내년 1분기 인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선 이투데이 조사에서 14명이 내년 1분기 중 추가 인상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다. 다만, 한은 내 분위기는 더 공격적이다. 1년에 8번 기준금리 결정 금통위가 열리고, 3·6·9·12월엔 없다는 점에서 이 총재 임기 전 남아 있는 내년 1·2월 금통위에서 모두 올릴 수 있다는 분위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 기준금리 수준인 1.25%까진 되돌려 놓을 필요가 있는 데다, 1.50%까지 한 번 더 인상해 내년 상반기 빼곡한 정치 일정과 차기 총재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내년 대선과 차기 총재 국회 인사청문회 일정이 겹치면서 차기 총재 공석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내년 5월엔 임지원 금통위원 임기가 끝나고, 6월 초엔 지방선거까지 있다.
한은 금리인상에 반대하지 않는다. 기준금리 1.50%도 여전히 완화 내지 중립 수준 정도로 보인다는 점에서 긴축이라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속도다. 아울러 금리인상을 위한 당국의 미시적 조치가 따라주지 않는다면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우선, 한은은 내심으로 가계부채 및 부동산값 급등에 대한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서둘러 금리인상에 나서는 측면이 있다. 이명박(MB) 정부 때는 747정책(7% 성장, 4만 달러 소득, 7대 강국)에 따른 저금리 고환율 정책에, 박근혜 정부 때는 ‘빚내 집 사라’는 소위 초이노믹스(최경환+이코노믹스의 합성어) 정책에 휘둘리며 금리인하를 단행해 왔다는 점을 만회하기 위한 측면이다. 이 총재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때마다 가계부채 문제를 감수하고서라도 경기를 부양할 때라고 언급해왔다. 다만, 마음만으로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거 급하게 금리를 올린 후 금융위기가 닥쳤다는 경험을 금리인상기인 지금 곱씹어 볼 필요가 있겠다.
금리인상과 함께 가계대출을 옥죄면서 꼭 필요한 가계대출까지 막히고 있는 중이다. 또, 금리인상으로 은행 수익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시국은 아직 진행형이다. 과거 부동산값을 잡는다고 대출을 옥죄자 굳이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는 고소득자만 이득을 본 사례가 있다. 금융당국의 세밀한 대책이 필요한 때다.
채권시장 역시 아우성이다. 내년 연말 미국 연준(Fed) 금리인상까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 불안에 이달 초 기획재정부는 2조 원 규모 긴급 바이백(국고채 매입)을 실시하기도 했다. 한은 역시 통화안정증권 발행물량 축소 등 조치를 취했지만, 국고채 단순매입 등 보다 적극적인 시장 안정에 나서야 한다.
코끼리를 쏘되, 흥분하고 야단법석을 떨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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